불공정한 세상 속 ‘진범’ 찾기 추리극[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4일 03시 00분


19세기 이성적 사회 향한 열망
논리 기반 추리소설 발전 동력
이젠 공정한 사회 향한 갈망이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서미애 지음/388쪽·1만3800원·엘릭시르


우진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며 아내와 딸과 함께 오순도순 산다. 평범한 날들은 딸이 갑작스럽게 살해당하며 산산조각이 난다. 3년 뒤에 우진의 아내가 자살한다. 그리고 우진은 제대로 처벌받았다고 생각했던 딸의 살인범들이 사회봉사와 교육 수료 정도의 형식적인 처분만 받고 이미 풀려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진범은 따로 있다’는 쪽지를 발견한다. 딸도 잃고 아내도 잃고, 더 이상 아무것도 없게 된 우진은 자기 손으로 딸 수정이가 살해당한 이유와 진범을 밝혀내려 달리기 시작한다.

19세기 중후반 영국에서 코넌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스를 중심으로 추리소설이 발전한 이유에 대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식민지에서 착취한 자원을 바탕으로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킨 유럽의 여러 나라는 태생적 권력과 부를 가진 귀족 중심 사회에서 자본이나 기술을 가진 중산층 중심 사회로 변화했다. 중산층은 경험과 증거로 증명할 수 있는 실증적인 논리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세습 귀족과 같은 전통적인 권력은 갖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증거를 바탕으로 합리적 추리를 펼치는 ‘탐정’으로 상징되는 실증적 이성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호해 주기를 원했다. 이러한 갈망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방향성을 결정했고 중산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추리소설 장르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정보라 소설가
정보라 소설가
그 후 150년 가까이 지난 21세기에 한국의 추리 스릴러 장르는 물론 이렇게 순진하지 않다. 서미애의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에서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평범한 중산층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를 알고 그 안에서 권력을 쥐고 자본을 가진 자들은 자기들끼리 이해관계에 맞춰 서로를 보호한다.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의 독특한 점은 권력과 자본을 독점한 자들의 개인 생활이 가정에서부터 무너지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을 독점한 상태에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질 만한 윤리관이 없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거나 깊이 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할 테니 가정생활이 원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기만 아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의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론 윗대에서 물려준 권력과 자본에 걸맞은 ‘스펙’을 장착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스펙에 연연하기보다 자기의 얄팍한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한다. 자본이나 권력이 태어날 때부터 거저 주어졌기 때문에, 그 이상 노력해서 자기 손으로 뭔가 개척할 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은 현대 한국 자본주의 사회 기득권층이 도달한 막다른 골목을 보여주는 셈이다. 막다른 골목답게 그 결말은 슬프고 답답할 뿐 전혀 시원하지 않다.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국문학을 공부한 서미애 작가는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순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는 언젠가 온라인 대담에서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가리지 않는 한국 문학의 힘은 사회 비판과 자아 성찰”이라는 취지로 말한 적 있다. 추리소설은 그러한 사회 비판에 근본적으로 가장 적합한 장르다.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은 숨 가쁜 추리와 반전의 미학과 함께 상실의 의미에 대한 성찰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추리소설#서미애#권력#자본#현대 한국#사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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