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났다. 한밤중 찻길에서 술 취해 비틀거리는 대학생 승민(이제훈 역)이 그를 피하는 택시들을 잡으려 외칠 때였다. “아저씨, 정릉 가요, 정릉.” 내 첫사랑도 거기 살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따로 있다. 이혼녀 서연(한가인 역)이 제주도 부둣가에서 건축가가 된 승민(엄태웅 역)과 술을 마신다. 만취한 서연이 땅에 주저앉으며 울부짖는다. “씨○, 다 X같아.”
그때까지 한국 영화에서 작부(酌婦), 몸 파는 여인, 억척스러운 시장 아줌마 말고 쌍욕을 하는 여성 캐릭터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뺨에 번진 붉은 입술연지 자국을 닦아내며 자신에게 손찌검한 남성에게 내뱉거나, 허리춤에 전대(纏帶)를 찬 채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서로 부여잡고 드잡이를 하거나, 소주병 서너 개 쓰러진 대폿집 드럼통에 널브러져 신세를 한탄하거나 하지 않는 상황에서 쌍욕을 하는 여성 캐릭터는 없었다. 더욱이 한가인 같은 아름다운 캐릭터가 쌍욕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것도 ‘씨○, 다 X같아’라니.
서연이 1990년대에 20대를 맞은 캐릭터였기에 가능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담뱃불 좀 빌려 달라’는 여대생 뺨을 60대 아저씨가 길에서 때리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하면 꼰대 정도가 아니라 야만적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어디서, 여자가”라는 고정관념의 둑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한 때다. ‘불우하게’ 자란, ‘천대받는’ 직업의 여성만이 욕을 해야 한다는 스테레오타입을 1990년대가 배경인 영화에서 지킬 이유는 없었을 터다. ‘씨○, 다 X같아’는 1990년대가 과거, 특히 1980년대와의 절연을 선언하는 포고문이다.
1990년대는 절차적 민주주의 획득에 따른 정치 자유화와 다양한 욕망의 분출로 문을 열었다. 동시에 지독한 인지부조화 시대였다. 소련과 동구(東歐) 공산권 몰락, 중국 개혁개방으로 현실 사회주의는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그 바탕이 된 사상과 이론은 복원된 출판의 자유에 힘입어 1980년대보다 더 널리 퍼졌다. 거기에 주체사상까지 더해졌다. ‘실재’는 사라졌는데 그 ‘담론’은 정치나 학계, 문단, 예술, 문화, 노동에서 주류 행세를 했다. 민족, 민중, 계급 같은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각종 언술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었지만 하나의 힘으로 작용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아니 그래도 개인이 꽃을 피운 분야는 대중가요였다. 현재 케이팝(K-Pop)의 자양분은 이때 배양됐다. SM YG JYP는 박진영을 비롯해 사실상 1990년대 20대를 맞은 사람들이 이끌어 갔다. 유희열 방시혁 테디 민희진도 마찬가지다. 당시 기성세대가 ‘도대체 너희 누구야?’라며 붙인 ‘X세대’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사람들이었다. 불운하다면 그게 다였다는 것이다.
‘90년생이 온다’는 이야기도 한물간 것 같은 마당에 1990년대 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다만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인 정치 파르스(farce·소극·笑劇)와 뒤따르는 헛소동을 보고 있자니 정치판에 ‘X세대 정치’가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회한이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은 최순실에게 놀아난 것이 아니다. 구(舊)시대 정치의 ‘막내’에게 정권을 내줬다는 것이다. 이 비루한 정치는 막내로 끝날 것만 같더니 아예 더 뒷걸음질했다. 불행히도 이 뒷걸음질은 사람이 바뀌어도 멈추질 않을 것 같다. “씨○, 다 X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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