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는 소득 대부분을 연 단위로 번다. 그러나 그 아래는 주 단위, 심지어는 시간당, 건당 소득을 올린다. 보수 지급 기간이 짧을수록 예측 불가능성과 소득 불안정은 더 커진다. 이는 정신적 스트레스로도 이어지기 쉽다. 책은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개개인의 시간 통제권이 줄어들게 된 역사를 되짚으면서 과로가 만연한 오늘날 ‘일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영국 런던대 교수이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공동창립자인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확산하고 기업가 정신이 표준이 되면서 노동이 ‘열정’으로 미화됐다고 지적한다. 이는 일상과 노동 간 경계를 흐리는 결과를 낳았다. 자기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통제하게 될 줄 알았던 플랫폼 산업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기그 워커’(단기 계약하에 초단기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의 현실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일’(work)과 ‘노동’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일은 가족 돌봄, 예술 활동, 공부 등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재생산 활동을 포함하지만, 노동은 태생적으로 따분하고 사고력을 앗아가는 수동적 행위를 뜻한다. 저자는 ‘일을 함으로써 자아 실현을 이룬다’는 오래된 명제 자체를 거부하지 않지만 노동을 옹호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일의 가치까지 하락했다고 본다.
책은 특정 진영에 특별히 매몰되지 않는다. 시간 통제권을 상실시킨 주체가 좌우 진영 모두라는 것이다. 과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노동주의를 받아들인 사실을 비판하며 “자유롭지 않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정당한 소득 분배를 요구하는 데 그쳤다. 사람들을 예속된 지위에 밀어 넣고 물질적 궁핍에 대한 공포를 조장했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이 노동시간을 줄여 돌봄, 자원 활동 등 사회적 책임감을 강화할 것이라고 본다. ‘2030년이 되면 주당 15시간만 일할 것’이라던 케인스의 한 세기 전 예언이 빗나가는 지금 ‘일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쟁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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