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울리는 재즈 싱어, ‘재즈 디바’ 윤희정에게는 습관이 있다. 상대로부터 좋은 인상을 받으면 재즈를 불러보지 않겠냐고 권유해본다. 면접하듯 노래를 불러보라고 테스트하지 않는다. 자신과 함께 불러보자고 한다. 그러면 그만의 매력이, 인생이 보인다.
윤희정에게는 재즈로 사람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박치, 음치인 사람이 손사래를 쳐도 자신의 사람 보는 직관을 믿는다. 재즈를 해보자고 밀어 붙이면서 감동을 뽑아낸다. 그에 이끌려 재즈를 처음 불러본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무대에서 자신을 재즈에 담는다. 무대에 내려오면 그 때야 정신을 차리는데, 이 ‘힐링’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산다.
사람들에게 이런 선물 보따리를 준지 벌써 27년째. 1991년 재즈로 장르를 바꿔 1997년 재즈 단독 무대에 오른 윤희정은 한국적 정서와 넉넉한 인심을 재즈에 채웠다. 다양한 장르와도 ‘크로스오버’ 했다. 트로트도 재즈에 버무렸다. 재즈에 대한 높은 진입 장벽이 그로 인해 금 가고 깨졌다. 재즈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는데 거창한 사명감과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절박하게 돈을 벌려 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재즈로 사람을 챙기고 소통하다 그렇게 됐다. “재즈는 ‘그냥 어렵다’였죠. 그런데 음식도 맛을 봐야 맛있는지 아닌지 알잖아요. 재즈의 맛을 다양하게 경험한 내가 알려주고 싶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이 노래를 아세요?’라고.”
이달 초 만난 윤희정은 샐러드를 직접 만들어 와서 연습실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먹다가 재즈를 배워 무대에 서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노래 재주는 아예 없다는 사람에게 “나를 믿어보라. 내 직관이 99% 맞으니까. 밝은 라틴 재즈 노래가 아주 어울릴 거다. 도전하자”라며 단 번에 재즈의 세계로 인도했다.
1997년부터 ‘윤희정 & 프렌즈’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 연예인을 비롯해 각계 각층 사람들에게 맞춤 재즈를 찾아줬다. 2011년까지 100회 공연으로 250명에게 재즈 인생을 선물했다. 1999년부터는 재즈 크리스마스 공연을 계속 하고 있다. ‘윤희정 & 프렌즈’는 2013년부터 ‘윤희정 재즈 프렌즈 파티’로 이어지고 있다. 재즈를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며 자신을 사랑하자는 본질적인 얘기를 한다. ‘윤희정 재즈 프렌즈 파티’에서도 자신에게 인상을 남긴 사람을 찾아 재즈로 자기 인생을 그려보도록 했다. 당사자는 인생 계획에 전혀 없던 ‘I’m Jazz Singer’가 됐다. 기수마다 7∼8명이 정말 대단한 가수처럼 조명을 받고 무대에 섰고, 박수를 받았다. 지금은 15기 멤버까지 배출이 됐다.“예전에는 114에 전화를 해 번호를 알아내서 무작정 ‘재즈합시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재즈로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사람이 보여요. 피아니스트 서혜경 씨의 동생인 건축가 서혜림 씨도 제가 무대에 세웠어요. 노래방에 왔는데 다른 방에서 서 씨가 노래하는 목소리를 듣고, 음색에 완전히 반했어요. 무작정 기다렸다가 만나 재즈를 하자고 했죠.”
어떤 기분일까. 사람들에게 재즈를 찾아주는 일이. “하얀 도화지에 인생을 그려준다고 할까요. ‘당신은 이렇게 살아왔어요’라고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재즈는 그리움이고, 휴식이고, 추억, 희망이죠. 이런 것들을 잠시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찾아주고 싶어요.”
재즈 배우자고 제안을 받으면 죽어도 못하겠다던 사람들이 ‘듣기 좋은 재즈’를 해내면 큰 보람을 느낀다. 재즈를 알게 된 날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말을 들으면 기쁘다. 이런 교감을 하면서 그의 재즈 세계도 풍성해졌다고 한다. 윤희정의 재즈는 그래서 ‘넘버 원’이 아닌 ‘온니 원(Only One)’을 지향한다.
“와인마다 맛이 다르고 스토리가 있잖아요? 같은 와인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맛이 다르죠. 노래도 마찬가지에요. 저도 어제 부른 노래와 오늘 부르는 노래하고 차이가 있어요. 사람마다 ‘애드립’도 달라요. 재즈는 그날의 노래에서 ‘필링’을 뽑는 거예요. 그러니 시시각각 감동이 변하죠.”
재즈는 ‘나’를 노래에 더 담아보려는 열정이 아닐까. “맞아요. 그런데 열정을 넘어 연민이죠. 열정만 갖고는 되는 일이 아니에요. 무대에 오르기까지 기다리면서 참고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나를 가엾게 여기고, 안쓰러워하게 돼요. 그러면 보는 사람들도 재즈에 도전하는 당사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 거예요.”
재즈 뮤지션으로 27년 세월. 악기 하나 이상을 다루고, 맛있는 식당을 두 군데 이상 알며, 아주 특별하게 좋아하는 재즈를 직업으로 삼아 ‘행운아’라고 늘 자랑한다. 물론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갖가지 어려운 일도 있었다. 힘에 부쳐 재즈 앞에서 ‘번아웃’ 상황을 맞이한 적도 있다. 그래도 고상하게 폼만 잡고 재즈를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일찍 지쳐 나가 떨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조금 더 일찍 재즈를 알지 못했던 것을 후회해요. 날이 갈수록 재즈가 좋아져요. 50대 때는 급하게 재즈를 했어요. 이제 70살이 넘으니 재즈를 느긋하게 대하게 됐답니다. ‘음악은 느리게 가도 되는구나’를 이제서야 느껴요. 기교를 넘어 여백의 미를 갖고 그 안에서 노래 박자를 넘나들게 돼요. 그러니 더 듣기 좋은 재즈가 나오더랍니다.사람들이 재즈로 인생을 돌아보고 ‘재즈 마인드’를 가졌으면 해요.골든걸들에게 말씀드릴 게요. 나만의 재즈를 배우고 싶으면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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