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굴곡의 역사… 마세라티는 멈추는 법을 모른다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7일 03시 00분


1914년 이탈리아서 출발해 경주차로 명성… 2차 세계대전-경영난으로 암흑기 겪었지만
세단 등 제품군 재정비해 럭셔리카 정점 등극… 지속가능한 미래 위한 전기차 개발에도 초점

마세라티 창립 110주년 기념 모델인 그란투리스모 110 아니베사리오. 순수 전기차로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보여준다. 마세라티 제공
마세라티 창립 110주년 기념 모델인 그란투리스모 110 아니베사리오. 순수 전기차로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보여준다. 마세라티 제공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
《이탈리아 사람들의 활기와 열정은 자동차와 어우러져 여러 전설적 브랜드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 배경에는 늘 모터스포츠가 있었다. 경쟁과 도전이 가득한 모터스포츠는 그들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져 라이프스타일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럭셔리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지금도 이탈리아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대부분은 모터스포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이탈리아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세라티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브랜드다. 모터스포츠를 위해 태어나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경쟁을 통해 얻은 성과로 능력을 입증받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열정이 지나쳐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도전을 통해 얻은 탄탄한 브랜드 이미지는 110년 전 탄생한 마세라티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마세라티는 1914년 12월 1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마세라티 가문의 여섯 형제 중 하나인 알피에리의 이름을 내건 회사였다. 형제들이 합심해 세운 회사는 이탈리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돼 발걸음을 잠시 멈췄지만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자동차에 대한 꿈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마세라티는 1920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 경주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다른 업체의 차를 경주차로 개조해 출전했지만 그에 만족하지 못했기에 직접 경주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독자 개발한 첫 경주차인 티포 26이 완성된 것은 1926년의 일이었다. 알피에리는 그해 열린 타르가 플로리오 경주에 직접 티포 26을 몰고 출전해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다. 경주차에는 바다의 신 넵튠(이탈리아어로는 네튜노)에서 영감을 얻은 삼지창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이 마세라티 엠블럼의 시작이었다.

2차 대전 전 마세라티의 가장 성공적인 경주차인 6CM.
2차 대전 전 마세라티의 가장 성공적인 경주차인 6CM.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마세라티는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하며 명성을 쌓아 나갔다. 1930년대에 걸쳐 유럽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했던 메르세데스-벤츠나 아우디, 알파 로메오 등 큰 규모의 업체들 속에서 소규모인 마세라티가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이기기 위한 기술에만 몰두한 탓에 회사는 늘 경영난에 시달렸다. 결국 1937년에 경영권은 기업가 아돌포 오르시에게 넘어갔고 마세라티 형제는 경주차 개발과 모터스포츠 활동에만 전념하게 됐다. 1939년에 본사를 지금의 모데나로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암흑기가 찾아왔지만 1946년에 전후 처음 출전한 국제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해 부활을 알렸다.

마세라티는 1947년에 내놓은 A6 1500으로 일반도로용 스포츠카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마세라티는 1947년에 내놓은 A6 1500으로 일반도로용 스포츠카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1947년은 마세라티 역사의 큰 전환점이었다. 첫 일반도로용 스포츠카를 내놓으며 새로운 길을 개척했지만 마세라티 형제는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마세라티는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다. 1950년대에는 250F 경주차가 포뮬러 원(F1)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비용 문제로 1958년에 철수하기 전까지 250F는 초기 F1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공적인 경주차로 자리매김했다.

럭셔리 스포츠 세단의 효시인 1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럭셔리 스포츠 세단의 효시인 1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1960년대 초 모터스포츠에서 발을 뗀 뒤 스포츠카 제작에 전념한 마세라티는 수많은 걸작을 내놨다. 3500 GT와 5000 GT 등으로 럭셔리 스포츠카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인 것을 시작으로 1963년에는 세계 최초의 럭셔리 스포츠 세단인 콰트로포르테를 선보였고 1966년에는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기블리가 고성능과 매력을 뽐냈다. 캄신, 메락, 보라 등 이후에 나온 여러 스포츠카도 앞선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21세기 마세라티 미드엔진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MC12(오른쪽)와 MC20.
21세기 마세라티 미드엔진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MC12(오른쪽)와 MC20.
그러나 계속된 재정난 끝에 1968년에는 시트로엥에 인수됐다. 혁신적 기술의 시트로엥과 고성능 럭셔리 카에 특화된 마세라티의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70년대 초반의 석유파동 여파로 두 회사 모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1975년에 기업가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와 이탈리아 정부가 나서 마세라티를 구했다. 이후 비투르보 등 대중적 모델들로 시장을 넓히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마세라티 MSG 레이싱 포뮬러 E경주차는 모터스포츠라는 브랜드의 뿌리와 전기 동력원이라는 미래에 대한 도전을 상징한다.
마세라티 MSG 레이싱 포뮬러 E경주차는 모터스포츠라는 브랜드의 뿌리와 전기 동력원이라는 미래에 대한 도전을 상징한다.
어려움이 그치지 않은 마세라티는 한때 크라이슬러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1993년에 피아트 그룹에 인수되며 재도약의 길에 들어섰다. 피아트 아래에서는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대대적 체질 개선과 새로운 제품들로 애호가들과의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1997년에는 페라리가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세계시장으로 무대를 넓히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제품군을 완전히 새롭게 재정비하면서 지금의 마세라티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고 지금은 스텔란티스가 된 피아트 산하 럭셔리 브랜드의 정점으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가 정통 스포츠카 혈통을 이어가는 사이 2010년대 중반에 나온 중형 세단 기블리와 브랜드 첫 SUV 르반떼는 브랜드가 더 다양한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리고 2004년에 등장한 MC12에 이어 2020년에 선보인 MC20은 남다른 스포츠카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은 마세라티에 지속가능성은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주제다. 미래에도 브랜드의 가치와 명성을 이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서도 전동화에 가장 속도를 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마세라티는 판매 중인 모델 대부분에 전기 동력원을 얹어 배출가스 없는 고성능 럭셔리 승용차의 시대를 열었다.

2022년부터는 순수 전기차 경주인 포뮬러 E에 참여함으로써 F1 철수 후 65년 만에 1인승 포뮬러 경주차로 치르는 모터스포츠에 복귀했다. 이는 최근 MC20 기반의 경주차로 GT2 경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한동안 떠나 있었음에도 모터스포츠라는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공개한 창립 110주년 기념 모델인 그란투리스모 110 아니베사리오가 상징하듯 마세라티는 지속가능한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미래를 차근차근 현실에 구현하고 있다.

#스타일매거진Q#스타일#마세라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