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불안의 시대’ 횡단하는 현대인에게… 때론 따끔한 충고를, 때론 따뜻한 위로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8일 01시 40분


《유럽과 중동에서 끊이질 않는 전쟁들, 기록적 폭염과 같은 기후 재난, 인공지능(AI)의 기회와 위협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불안과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인지 ‘동아일보가 선정한 2024 올해의 책’에는 디지털 불안, AI 공포, 폭염 피해 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들이 대거 선정됐습니다. 동시에 불안의 시대를 맞아 ‘마음의 평온’을 구하는 에세이나 소설도 뽑혔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책들은 올해 출간된 것이 없어 선정 대상에선 제외됐지만 ‘문학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는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올해 새로 출간돼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 10권을 소개합니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



1위 불안 세대
◇조너선 하이트 지음·이충호 옮김/528쪽·2만4800원·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에서 출발해 우리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빌런에 맞설 방법을 찾아가리라. 다만, 이 문제는 뇌의 가소성이 높은 청소년기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뇌의 물리적 구조가 다시금 변화하는 인생 후반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렇게 망가진 뇌를 가진 성인들이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나를 더 불안케 한다.”(노의성 사이언스북스 주간)

가장 많은 선정위원들의 지지를 얻은 이 책은 미국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가 1996년 이후 태어난 Z세대의 과도한 불안 심리를 파헤친 인문교양서다. 저자는 ‘가상 세계의 과소보호’와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가 Z세대를 불안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범죄와 팬데믹에서 자녀를 보호한다며 쥐여준 스마트폰에 아이들이 중독됐다는 것.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올려 온라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끝없는 압박감이 이들을 불안으로 내몬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중독된 젊은 세대의 상태가 우려할 만큼 심각함을 폭로하는 책”이라며 “똑같이 그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어른으로서 막연하게 느끼던 미래 세대에 대한 불안을 일깨운다”고 평했다.

주위 청소년들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을 목격하고 이 책을 펴든 건 일반 독자뿐이 아니다. 이현화 혜화1117 대표는 다음과 같은 생생한 추천 이유를 남겼다. “오랜만에 만난 어린 조카가 종일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 지켜보는 마음은 괴롭다. 어렴풋이 느끼던 나의 괴로움과 무거움의 근거를 드디어 발견했다. 그런데 그 근거를 돌아보자니 어린 조카만이 아니라 나부터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깨닫는다. 각성 역시 책이 갖는 오래된 효용임도 새삼 깨닫는다.”

2위 넥서스
◇유발 하라리 지음·김명주 옮김/684쪽·2만7800원·김영사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경고등을 켠다. 끌고 가는 것 같지만 끌려간다. 끌려가는 줄 모르고 끌려가니 더 위험하다. 우리를 집어삼킬 블랙홀 앞에 ‘빨간불’이 켜졌다. 자기 파괴적 인간들이 구축한 정보의 넥서스가 인류의 미래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진단은 섬뜩하다.”(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글로벌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쓴 저자가 6년 만에 낸 신간으로, 발간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1위(교보문고 기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AI는 인류사의 발전을 가져온 ‘정보 네트워크’의 새로운 비(非)인간 구성원으로, 그 자율성 때문에 인류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수만 년간 사피엔스는 법, 통화, 국가와 같은 상호주관적 현실을 만들어 서로 교류해 왔는데 자율성을 지닌 고도의 AI가 정보 네트워크에 끼어들었다는 것. 김기중 더숲 대표는 “AI의 출현이 그동안 인류가 쌓아 올린 것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진화할 것인가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엿볼 수 있다”고 평했다.

이른바 ‘빅히스토리’의 거장답게 AI를 장구한 역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저자의 솜씨가 인상적이다. 양은경 고려대출판문화원 편집인은 “그 세대의 필수 담론을 반걸음 먼저 발견하고 반뼘 넓게 바라보는 하라리의 시야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독자의 시야 또한 확장된다”며 “‘넥서스’는 인간을 위협하는 비인간 지능이 실제적 위협과 도전으로 다가온 올해 시의성과 시사점 모두를 견지한 결정적 한 권”이라고 말했다. 이병호 동국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주제나 소재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한다”고 했다.

3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지음·김희정, 조현주 옮김/359쪽·1만7500원·웅진지식하우스
“세상에는 베스트셀러가 될 운명을 타고난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가장 큰 상실에 직면한 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도피하며 진정한 우아함을 발견하는 이야기다.”(양은경 고려대출판문화원 편집인)

미술관에 가서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작품을 지키는 경비원이다. 이들은 관객을 감시하면서 배려도 하는 독특한 역할을 맡는다. 그림자처럼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혹시나 손이 작품으로 향하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그런 경비원도 일에서 잠시 벗어나 그림을 감상하기도 한다. 이 책은 온종일 작품과 함께 있고 싶어 미술관 경비원이 된 사람이 썼다. 저자는 두 살 위의 형이 암 투병을 하다 스물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2008년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한다. 바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이었다.

23만1000m²(약 7만 평)나 되는 거대한 공간에서 경비원들은 매일 아침 자신이 지킬 구역을 배정받는다. 이집트부터 중세 미술, 르네상스, 현대 미술까지 수천 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작품에 얽힌 감정의 흔적을 저자는 더듬는다.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기록함과 동시에 형을 보내며 느낀 감정을 교차해 보여준다. 모든 것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이다. 일상에서 자신이 마비되는 것만 같을 때, 오롯이 혼자가 되어 몰입하는 경험을 미술관을 매개로 보여준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우리가 진짜 돌봐야 할 것은 인생 그 자체뿐임을 알려준다”고 평했다. 정지혜 출판기획자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고요한 쉼을 보낼 수 있는 안식년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했다.

공동 4위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홍한별 옮김/131쪽·1만3800원·다산책방
“어떤 사건 앞에서 요동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간결한 단어들과 문장으로 묘파하는 소설. 소설이 문체의 힘으로 꼿꼿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장르란 걸 알게 해준다.”(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아일랜드 작가인 저자는 2021년 이 책을 출간하고 이듬해 오웰상을 받은 데 이어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역대 부커상 후보작 중 가장 짧은 분량의 소설로, 최근 영화화돼 상영 중이다.

소설은 가난이 소녀들에게 강제한 고통과 희생, 그 상황을 외면하는 어른들의 위선에 대해 묻는다. 배경은 1985년 12월 아일랜드 도시 뉴로스.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배달로 아내(아일린)와 딸 다섯을 부양한다. 딸들을 동네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의 졸업생으로 키우려는 게 유일한 목표다.

그러던 그는 배달을 간 수녀원에서 탈출을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소녀를 마주한다. 소녀들이 수녀원에 감금돼 혹독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그는 도시에서 수녀원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리고, 추가 행동을 주저한다. 소설은 자신의 안위와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절제와 생략, 상징과 암시로 가득한 문체로 사회와 국가의 폭력을 고발한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재교육을 명목으로 고아들을 수용해 감금과 강제노역을 일삼았던 곳. 1996년 문을 닫았고 국가는 2013년이 되어서야 이 일을 사과했다.

이병호 동국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짧고 담백하지만 섬세하면서 밀도 높은 문장들이 시처럼 읽힌다”며 “사소한 것들에서 건져낸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거대 서사로 읽히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평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서사의 힘을 보여준 작지만 큰 소설”이라고 했다.

공동 4위 폭염 살인
◇제프 구델 지음·왕수민 옮김/508쪽·2만3000원·웅진지식하우스
“최악의 폭염을 매년 경신할 인류에게 이 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교양이자 행동을 위한 최신 팸플릿.”(황서현 휴머니스트 편집주간)

기상학자로 2019년 전작 ‘물이 몰려온다’에서 해수면 상승을 경고한 저자는 이 책에서 원제 ‘더위는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The Heat Will Kill You First)’가 말해주듯 기온 상승이 가져올 직접적인 위험을 경고한다. 2019년 세계에서 더위로 사망한 사람은 48만 명이었고 이 숫자는 앞으로 더 늘 것이다. 2003년 프랑스를 강타한 폭염으로 1만5000명이 숨졌고 파리 도심에서만 1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대멸종은 진행 중이다. 더위는 식물의 개화 시기를 바꾼다. 꽃을 피웠는데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식량 문제로 연결된다. 지난 10년간 과학자들이 조사한 동물 종(種)의 절반가량이 기후 변화로 분포지가 바뀌었다. 육상 동물들은 10년마다 20km씩 이동하며, 해양 동물은 이보다 빠르다. 서로 처음 조우하는 동물들 사이에서 대역병의 단초가 생길 수 있다. 저자는 2019년 발생한 코로나19도 평소 만날 일 없던 동물들이 중국 우한의 시장에서 접촉하면서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대안은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거나, 최소한 줄여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준비돼 있을까. 세계 유력 정치 지도자를 비롯해 여전히 ‘지구 온난화는 허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저자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치는 심각한 문제들을 하나씩 호명한다”고 평했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틀리길 간절히 기대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현실화된 비관적 전망이 담겼다”고 했다.

공동 5위 매너의 역사
◇설혜심 지음/672쪽·3만8000원·휴머니스트
“매너도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인류가 본래부터 갖추고 있지 않다. 서양 사회가 품위 있는 매너를 만들어간 긴 역사를 짚어낸 매우 흥미로운 저서다. 한국이나 동양 사회에서 매너의 역사를 추적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서양사학자이자 생활사 연구로 정평이 난 저자가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 말까지 매너의 역사를 분석한 책이다. 이를 위해 유럽 각국의 처세서와 지침서, 편지 등 100여 권의 문헌을 섭렵했다. 기존 주류 역사학에서 잘 다루지 않은 매너를 심층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저작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매너는 덕을 갖춘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이를 구별하는 표지였다. 하지만 로마의 키케로가 등장하면서 매너는 계급적 구별 짓기의 수단이 되어 갔다.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엘리트가 갖춰야 할 요소로 매너를 처음 언급했다. 이후 중세 유럽에선 프랑스의 궁정예절이 매너의 근간이 됐지만 18세기 산업화와 더불어 귀족이 아닌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면서 ‘소탈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영국식 젠틀맨 매너가 주류를 이뤘다. 20세기 들어서는 계급적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사회적 구별 짓기의 단위가 계급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표정훈 평론가는 “저자는 소비, 여행, 온천, 지도, 인삼, 추리소설, 관상 등 다양한 흥미로운 주제에 천착한 저술을 선보여 왔다”며 “매너가 실종돼 버린 것 같은 현실이 자주 펼쳐지는 가운데 단연 주목할 만한 책”이라고 평했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무례한 세상에서 펼치는 예의범절의 역사. 우리 시대의 매너는 무엇이어야 하나 고민하게 한다”고 말했다.

공동 5위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240쪽·1만4400원·문학동네
“김애란 작가의 13년 만의 신작.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

한국 문학에 ‘감수성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받는 소설가 김애란 작가가 13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소설. 전작 ‘두근두근 내 인생’에 이어 다시 한 번 청소년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정지혜 출판기획자는 “김애란 작가의 첫 장편을 읽고 느꼈던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10여 년이 흐르고 만난 두 번째 장편은 그때의 추억과 버무려져 또 하나의 좋은 기억이 됐다”며 “작가와 독자가 각자의 삶을 살다가 이렇게 다시 만난다는 묘한 설렘이 독서의 기쁨을 더한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는 고등학교 2학년인 세 아이(지우, 소리, 채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화목하고 풍족해 보이던 채운네 가족은 1년 전 ‘그 사건’으로 어머니는 교도소에 수감되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다. 세 아이의 시점을 오가며 진실이 밝혀지는 구성으로, 인물의 다면성을 김애란 특유의 간결하고 여운 있는 문장으로 그려낸다.

곽효환 시인(전 한국문화번역원장)은 “세 아이가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슬픔을 통해 교감하고 밀착하며 성장하는 새로운 시선을 가진 성장소설”이라며 “세 아이를 통해 청소년기의 가족과 친구, 주변 환경 그리고 청소년의 내면과 번민 등에 중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 장편에서 익히 알고 있는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피가 섞이지 않은 ‘유사 가족’, 사람 못지않게 친밀감을 주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등장시켰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비밀에 대하여, 결핍에 대하여, 슬픔에 대하여 소설 속 고등학생 세 아이가 펼치는 세계”라며 “느슨하지만 질긴 우정에 기대어 성장하는 세 아이의 자아 형성의 기척들이 아프게 울린다”고 말했다.

공동 6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336쪽·1만6800원·문학동네
“우리 사회의 단면을 종횡무진 날카롭게 재단하는 소설. 그의 차가운 소설을 읽고 나서 우리는 단번에 뜨거워졌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의 첫 소설집. 치열한 사회의식을 담아 써 내려간 9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주목할 건 한국 현실을 담은 작품이 많다는 것. 콘서트장을 서성이는 팬(‘세상 모든 바다’), 유명 연애 프로그램의 참가자(‘롤링 선더 러브’)처럼 곁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 군상을 섬세하게 그렸다. 진정한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보편 교양’)처럼 묵직한 질문도 담았다.

문장마다 유머와 재치가 넘친다는 것도 특징이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유머와 위트를 무기 삼아 우리 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응원봉 세대’의 삶과 희망을 담담하면서도 흥미롭게 펼쳐낸다”고 평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수록된 단편마다 인물 캐릭터의 생생함과 이야기의 힘에 끌린다. 이 소설들이 재밌는 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소설화하기에 매우 좋은 복잡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시켜서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선정위원들은 젊은 스타 작가의 탄생에 주목했다. 작가는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두 차례 받는 등 일찌감치 평단에서 주목받았다.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돼 ‘문장 웹진’ 역대 조회 수 3위에 오르는 등 대중도 사로잡았다.

출판사 혜화1117의 이현화 대표는 “오랜 시간 소설을 떠나 있던 이들을 확실하게 돌려세울 힘을 지녔다. 새로운 작가라는 단순한 수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 작가의 건재함이 반갑다”고 말했다. 정지혜 출판기획자는 “작가의 첫 장편도 무척이나 기대하게 된다”고 했다.

공동 6위 스탈린의 서재
◇제프리 로버츠 지음·김남섭 옮김/543쪽·3만1000원·너머북스
“좋은 책, 나쁜 책이 없다고 믿으며 살았는데 그 믿음을 뒤흔든 책.”(노의성 사이언스북스 주간)

무자비한 독재자였지만 애독가였던 스탈린의 장서 목록과 메모를 통해 그의 사상이나 감정의 내면을 파고든 책이다. 스탈린은 하루 300∼500쪽을 읽어낸 독서광으로, 책 곳곳에 ‘동의함’, ‘옳아’, ‘상놈’, ‘거짓말쟁이’ 같은 짧은 감상을 메모로 남겼다. 김기중 더숲 대표는 “마르크스나 레닌도 아닌 스탈린이 엄청난 독서광이었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독서광 스탈린의 면모를 보고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불경한 생각’을 하게 됐다는 자조적(?) 감상도 있었다. 박윤우 부키 대표는 처음엔 “이런 책이야말로 진짜 책이야”라고 했는데, 읽다 보니 “책이라는 놈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이어 그는 이런 평을 남겼다. “열렬한 독서가라는 점에서나 철혈 독재자라는 점에서나 똑같은 마오쩌둥과 스탈린이 모두 자기 권력을 위해 수천만 명을 희생시키는 짓을 벌이고, 그걸 책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정당화했다. 어쩌면 출판사 사장 짓을 때려치우는 게 세계를 위한 건 아닐까?”

냉혹한 독재자의 얼굴 아래 숨겨진 높은 이해력과 예민한 감수성이라는 의외의 면모도 발견할 수 있다. 수십 년간 야만적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저자의 균형 잡힌 서술에 따라 인간 본성에 비춰 생각해 보며 역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황서현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은 “‘지적인 독재자’라는 표현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해 누군가가 읽은 책으로 쓴 평전의 매력에 감탄했다”며 이런 추천을 남겼다. “한 인물에 대한 가장 깊고 입체적인 이해에 책은 얼마나 적절한 재료인가. 이런 시도가 많아져 평행선 같은 우리 역사 인물 평가에 새로운 돌파구를 내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추천한다.”

공동 6위 운동하는 사피엔스
◇대니얼 리버먼 지음·왕수민 옮김/644쪽·2만6800원·프시케의숲
“운동의 효과를 설명한 책은 많다. 그러나 진화생물학, 인류학과 함께 살펴보는 건 신선하다. 알맞게 움직이고 적절히 쉴 동기를 주는 확실한 책.”(김효형 눌와 대표)

새해만 되면 운동을 결심한다. 실패하고, 다시 결심한다. 수많은 세월을 애쓰고도 도무지 움직이기 싫은 이유는 뭘까. 책은 인간이 운동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걷기로는 살을 뺄 수 없다’ 등 운동에 관한 12가지 미신을 치밀하고 유쾌하게 바로잡는다. 인간 몸을 광범위하게 연구해온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가 썼다.

풍부한 전문지식과 현장 경험을 위트 있는 문체로 풀어낸 것이 강점이다. 인간과 가장 촌수가 가까운 유인원은 하루 대부분을 빈둥거리면서 보내고, 19세기 영국에서는 트레드밀(러닝머신)이 수형자들에게 벌을 주는 수단이었다는 점 등으로 고정관념을 부순다. 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는 “환상적으로 재미있게 읽힌다. 신체와 정신, 과학과 철학, 지성과 감성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리에게 진정으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평했다.

마지막 장은 부제 ‘움직이기 싫어하도록 진화한 몸을 어떻게 운동하게 할 것인가’에 꼭 맞다. 이론적 설명을 넘어 적절한 운동 방법까지 살펴보면서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의 알맞은 비율, 최적의 운동 조합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출판사 혜화1117의 이현화 대표는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만에 어떤 결과를 이뤄냈다는 눈부신 성공담만큼이나 헬스장으로 기꺼이 나가게 해준다”는 평을 남겼다. 김상훈 교보문고 대표는 “사람의 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운동에 대한 재정의를 위해 일독을 권한다”고 했다.


올해의 책 어떻게 뽑았나
동아일보 출판학술팀은 매주 토요일자 ‘책의향기’ 지면에 비중 있게 소개를 했거나 출판계에서 주목받은 올해의 신간(1월 1일 이후 출간)들 가운데 50권을 ‘올해의 책’ 선정을 위한 후보 도서로 1차 선정했다. 이 리스트를 바탕으로 출판, 학술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들이 각각 5권을 골랐고, 추천 사유도 보내왔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추천받은 상위 10권을 ‘2024년 올해의 책’으로 최종 선정했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26명·가나다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곽효환(시인·전 한국문화번역원장)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기중(더숲 대표) 김상훈(교보문고 대표) 김태희(사계절출판사 총괄팀장)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효형(눌와 대표) 노의성(사이언스북스 주간) 박성열(사이드웨이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양은경(고려대출판문화원 편집인)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병호(동국대 문화재학과 교수) 이치억(공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현화(혜화1117 대표) 장은수(출판평론가)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찬(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 정지혜(업커밍스토리즈 기획실장)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표정훈(출판평론가) 황서현(휴머니스트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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