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본보 선정 올해의 인물
韓-亞 여성 첫 노벨문학상 수상 영예… 5·18 등 역사 소재로 세계 공감 얻어
英-美 등 해외서도 ‘책 품절’ 신드롬…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
집필 중인 신작 새해 초 발표할 듯
한강은 이달 10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에게서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 시상식의 상징인 ‘블루카펫’ 위에 서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장면은 비상계엄과 뒤따른 국정 혼란으로 얼룩진 연말에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안겨줬다. 한국 문학을 넘어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 인정이자 경사였다.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밝힌 수상 소감에서 그는 필연적으로 온기를 품으며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하는 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는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사람들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서로를 연결해준다”며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말했다.
● 한국 문화의 도약, 지역성 한계 넘어 세계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주변부에 머물던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에 진입했다는 자부심과 위상 변화를 갖게 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간 지역 문학의 한계로 여겨진 광주 5·18, 제주 4·3 등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그의 작품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상처 입는 인간이라는 인류의 공통 화두를 탁월하게 형상화”(문학평론가 정여울)했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온다.
‘소년이 온다’(2014년)에서는 광주 5·18민주화운동,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에서는 제주4·3사건을 배경으로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상처를 아름답고 집요한 방식으로 헤집으며 보편성을 획득했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 문학이라고 하는 하나의 복합체가 세계 문학에 진입을 하게 된 셈”이라며 “각 작가들의 작품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한국 문학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최진영은 “한국어를 쓰는 작가와 독자들에게 이번 수상은 엄청난 응원이자 격려가 됐다”고 말했다.
한강은 비상계엄 사태 이틀 만인 이달 5일 노벨 문학상 시상식 등 노벨위크 참여를 위해 스웨덴으로 출국하는 바람에 외신 등으로부터 관련된 질문 공세를 받기도 했다. 그는 “모두들 그러셨을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강압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길 바란다”라면서도 “이번 일로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에 감동했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필사 열풍’ ‘텍스트힙’… 새해 신작 발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올 한 해 한국 문학은 신드롬급의 관심을 받았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등에서 하루 만에 한강의 작품이 30만 부 넘게 판매됐고 닷새 만에 100만 부를 돌파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도 책이 품절되는 등 해외에서도 한강 열풍이 일었다. 젊은 세대의 글쓰기 열풍인 이른바 ‘텍스트 힙(text hip)’을 이끌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우찬제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노벨 문학상을 계기로 독자들이 한강을 읽었던 경험이 한국 독서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독서의 깊이를 깊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새해에도 반가운 소식이 준비돼 있다. 이르면 새해 초 한강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강은 이달 12일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시상식 관련 모든 일정을 마친 뒤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 글을 쓰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작가는 ‘겨울 3부작’의 마지막 경장편을 집필하고 있다. 작가는 줄곧 “이제 따뜻하고 밝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쳐 왔다. 신작에 그런 내용을 담을 것이란 것이 출판계의 전망이다. 이번 작품이 공개되면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2018년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별’ 과 이어지는 연작소설 형태가 완성된다.
작가로서의 전성기가 많이 남은 만큼 앞으로 그의 작품 활동은 더 큰 기대를 품게 한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한강은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입니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입니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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