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자극적인 ‘쇼트폼 콘텐츠’ 홍수속
해외여행 ‘풍향고’ 3100만뷰
삼국지 설명 ‘침착맨…’ 2100만뷰
“흡입력 있는 전달, 롱폼이 유리”
“30분짜리 영상 예상했다가 100분인 거 봄. 일주일 치 ‘혼밥’용 영상 찾아서 매우 기쁨.”
지난달 유튜브 채널 ‘뜬뜬 DdeunDdeun’에서 내놓은 웹예능 ‘풍향고’ 1화에 달린 댓글이다. 유재석의 ‘핑계고’ 스핀오프(번외) 콘텐츠인 풍향고는 배우 황정민과 유재석, 양세찬, 지석진이 지도 앱 없이 해외 여행을 하는 내용을 담았다. 회당 러닝타임이 약 100분에 육박하는 ‘롱폼(long-form) 콘텐츠’지만, 4편까지 공개된 시리즈의 총 조회수는 30일 기준 3100만 뷰를 넘었다. 댓글엔 “황정민 주연 영화 한 편 개봉했네”, “1시간 반 순삭함” 등 호평이 줄을 이었다.
짧고 자극적인 장면 위주로 편집된 쇼트폼(Short-form) 콘텐츠의 시대에, 호흡이 긴 ‘롱폼’이 인기를 끄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부분 긴 시간 내내 집중하지 않더라도 계속 틀어놓고 있을 수 있는 포맷의 콘텐츠들이다.
형식은 다양하다. 1시간이 넘는 웹 예능부터 4, 5시간 동안 스트리밍되는 라이브 방송 등이다. 밥 먹을 때 TV 켜놓듯 ‘무해한 밥친구’ 같은 묘미를 주는 게 롱폼의 특징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쇼트폼을 즉각 소비할 때 오는 피로감과 달리, 집중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멍’을 할 수 있는 롱폼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튜버 침착맨이 5시간 6분에 걸쳐 삼국지를 친근하게 풀어 설명한 동영상 ‘침착맨 삼국지 완전판’은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2189만 회 가까이 된다. 2020년 업로드된 게시물이지만 지금도 조회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에도 “몇 번을 봐도 웃기다”, “심심과 재미 사이 그 사이, 자기 딱 좋음” 등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
웹툰 만화가 이말년이었던 침착맨은 과거에도 삼국지 애호가로 유명했다. 중국 후한 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 태수직의 매관매직(賣官賣職)이 비일비재하던 상황을 오늘날에 빗대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보다 안산시장이 인기가 있는 거지” 등으로 설명한다. 직장인 민모 씨(31)는 “이미 봤던 영상이더라도 침착맨 입담이 좋아서 계속 틀어놓게 된다”며 “재미만 있다면 긴 콘텐츠를 오히려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롱폼은 많은 정보량을 전달하기에도 유리하다. tvN 교양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 등이 대표적이다. ‘피라미드의 미스터리’, ‘일본 버블경제의 붕괴’ 등을 90∼100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들은 대부분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긴다.
유명 PD들이 본격적으로 웹예능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도 롱폼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나영석 PD가 이끄는 채널십오야의 ‘나영석의 나불나불’, 김태호 PD가 이끄는 제작사 테오(TEO)의 ‘장도연의 살롱드립’ 등이 특히 인기다. 한 종합편성채널 PD는 “요즘 웹예능은 웬만한 방송국 예능보다 퀄리티가 좋다”며 “롱폼은 쇼트폼에 비해 PPL 등 마케팅 수단이 더 다양해 수익 다각화 차원에서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2분 내외의 짧은 음원이 인기를 끄는 최근 가요계에서 긴 타이틀 곡으로 승부를 보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이승윤이 올 10월 발매한 정규 3집 앨범 ‘역성’의 선공개 타이틀 곡 ‘폭포’는 길이가 6분에 이른다. 더블 타이틀 곡 ‘역성’도 5분 7초다. 미니앨범이나 싱글을 많이 발매하는 최근 트렌드와 달리 15곡으로 꽉 찬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이승윤은 롱폼이라는 특이함에 주목을 받자 “나도 쇼트폼을 즐기지만, 정말 하고 싶은 건 롱폼 콘텐츠였다”며 “쇼트폼 시대에 롱폼을 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흡입력 있게 전달하려면 롱폼 콘텐츠가 확실히 유리하다”라며 “쇼트폼 위주의 생태계에서 이처럼 콘텐츠가 세분화되는 추세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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