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첫 신춘문예 100주년 “마음을 움직이는 글 쓰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일 01시 40분


[동아일보 신춘문예2025]
7전 8기- 새 장르 도전 영예의 9인…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걸 채운 느낌”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0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함께 모였다. 왼쪽부터 윤주호, 정의정, 나혜진, 김준현, 류한월, 문은혜, 김민성, 박진호, 장희수 씨.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제 어디 가서도 ‘나 작가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걸 채운 느낌입니다.”

한국 언론 최초로 100주년을 맞은 20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된 김민성 씨(50)는 둘째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던 길에 당선 전화를 받았다. 처음엔 모르는 번호라 받지도 않았다. ‘신춘문예입니다’라는 문자를 보고서야 전화를 걸었다. 당선 소식을 들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김 씨는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2008년부터 영화, 드라마 가리지 않고 대본 작업을 해왔다. 두 차례 각색 경험 외에 영화화된 시나리오를 써본 적이 없어 어디 가서 ‘작가’라고 말할 때 스스로 버겁다는 생각을 했단다. 스스로 임계점에 도달했다 싶을 무렵 들려온 당선 소식은 벅찼다. 하지만 이내 그는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잠시 먹먹해졌다. “살아 계셨으면 집 벽을 신문으로 도배하셨을 거예요. ‘아버지, 저 동아일보 신춘문예 됐어요!’ 이러면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건데…. 하늘나라에서 아버지가 봐주셔서 된 거죠.”

올해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2025년 당선자 9명이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였다. 중편소설 김준현(38), 단편소설 박진호(37), 시 장희수(33), 시조 류한월(54), 희곡 윤주호(33), 동화 나혜진(23), 시나리오 김민성, 문학평론 정의정(28), 영화평론 문은혜 씨(51)가 주인공. 동아일보는 1925년 국내 최초로 신춘문예를 시작한 이래 첫해 윤석중을 시작으로 황순원(1933년), 서정주, 김동리(1936년)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을 배출해왔다. 올해 당선자들은 한국 신춘문예 100년 역사의 새로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선자 중에는 한 우물만 판 끝에 7전 8기로 당선된 이가 있는가 하면 다른 장르에 도전해 새로운 길을 찾은 사람도 있다. 시 당선자 장희수 씨는 문학과 무관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8년째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했다. ‘이 길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매년 날씨가 쌀쌀해지는 9, 10월이 되면 ‘이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난 할머니에 대해 쓴 시 ‘사력’으로 당선됐다. 장 씨는 “가족을 소재로 시를 써본 게 처음인데 이런 감사한 소식을 듣게 됐다”며 “아무래도 시가 되는 것들은 기쁨과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시를 쓰는 건 기쁨”이라고 말했다.

중편소설 당선자 김준현 씨는 앞서 시, 동시, 평론으로 데뷔한 다관왕이다. 그는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처음 등단했다. 시를 쓰고 창작 강의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품었던 소설가의 꿈이 남아 있었다. 그는 “가장 오래된 꿈으로 돌아온 것 같다”며 “다른 장르로 넘어갈 때, 그리고 다시 돌아올 때 새로 겪어야 하는 저항감 같은 것이 제겐 큰 동력이 된다. 저항이 생길 때 ‘제대로 쓰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시조 당선자 류한월 씨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성과를 거둔 사례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인 그는 처음엔 미문(美文)을 쓰고 싶은 마음에 시를 쓰다가 시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류 씨는 “엔지니어 출신이다 보니 제약이 있을 때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 글자 수 제한이 있는 시조를 쓸 때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잘한 실패들을 많이 해보면 해본 것 중에 느낌이 오는 것이 있다. 너무 조심하면서 한 방에 이루려 하지 말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류 씨는 앞으로 아이들을 위한 ‘동시조’ 그림책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학 국문과 시간강사인 문은혜 씨는 처음 응모한 영화평론이 당선됐다. 매년 겨울이면 신춘문예 생각이 났지만 ‘너무 나이가 많은 게 아닐까’ 싶어 주저하다가 첫 응모에 덜컥 당선의 영광을 안은 것. 그는 “어떤 한계 때문에 자꾸 스스로 가두려 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캐주얼하게 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 씨는 앞으로 2, 3년 안에 글을 모아 영화평론집을 내는 게 목표다. “그때쯤이면 저에 대해 더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안에 무궁무진한 게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올해 최연소 당선자로 동화를 쓴 나혜진 씨는 대학 시절 내내 학교 바로 옆 유치원을 오가며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올 2월 졸업 예정인 그는 “오랫동안 쓴 선배 작가님들의 노하우를 따라갈 순 없겠지만 요즘 세대에 맞춰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내는 건 제가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도시설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단편소설 당선자 박진호 씨는 “본업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고 싶다”며 “좋은 기회가 왔으니 최대한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건축 업무를 하는 와중에도 매일 2시간씩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희곡 당선자 윤주호 씨는 “희곡은 공연화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글이다 보니 무대에서 구현될 기회를 계속 찾아야 한다”며 “신춘문예는 앞으로 계속 써나갈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었다”고 말했다. 윤 씨는 방송국 예능 PD를 거쳐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재학 중이다.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문학평론 당선자 정의정 씨는 앞으로 논문이든 평론이든 부모님도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쉽고 재밌게 쓰고 싶다고 했다. “제게 문학평론을 한다는 건 세상 평론과 비슷합니다. 좀 더 높은 해상도로 세상을 읽는 수단입니다. 계속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려고 공부하겠습니다.”

희곡, 시나리오, 문학평론, 영화평론, 중편소설 당선작 전문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사이트(www.donga.com/docs/sinchoon)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2025#당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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