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100주년]시가 되는것들은 기쁨과 멀어, 그런데도 시를 쓰는건 ‘기쁨’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일 01시 40분



● 당선소감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장희수 씨
장희수 씨
기쁘지만 겁도 난다면 배부른 소릴까요. 그래도 배고픈 것보단 나은 거겠죠? 당선 소식에 광막해지는 기분입니다. 이제부턴 네 글을 읽는 게 누군지 모를 수도 있어,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 이제가 지금이고요. 99.99%의 확률로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말해볼 겁니다. 읽어줘서 고마워요. 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때는 천재로 불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어요. 일필휘지, 촌철살인, 영감과 미문. 근데 따라 해 봐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나는 바보다 생각하고 쓰기로 합니다. 나는 제일의 바보다. 놓으면 놓아지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잡으면 잡힌다는 푸른발부비새처럼. 너무 무지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양.

알던 것도 모를 거고, 울면 안 되는데 울 거고, 이태리산 스파게티 면은 두 동강 내어 삶을 겁니다. 있지도 않은 원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나는 당신을 용서해요, 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일을. 쟤는 어쩜 멍청한 말 하기론 제일이네, 소리를 듣는다면 칭찬으로 여길 겁니다. 뭔들 일등이면 좋은 게 아니던가요.

물론, 암만 생각해 봐도 시가 되는 것들은 기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시를 쓰는 건, 기쁨일 거예요. 나는 지금 푸른 발바닥을 신은 기분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어딘가로 가고 있을 겁니다. 생각과 태도가 비슷해 편한 형준. 쓸수록 이어지던 글처럼 인연이 되어준 용준, 민성, 준형, 예은, 연덕. 마지막 퇴고를 도와준 지민. 나를 짚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당선 자리를 내어준 수많은 문우들에게 감사합니다. 철딱서니 없지만 악함도 없어 자랑스러운 영찬, 태선, 선기와 윤곤. 천국을 본떠 만든 게 분명한 나의 가족.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을 알려주신 이학순 여사께도 두고두고 감사합니다.

△1992년 대전 출생

소소한 이미지로 삶-죽음에 대한 사유 성공적 이끌어내



● 심사평

조강석 씨(왼쪽)와 정호승 씨.
조강석 씨(왼쪽)와 정호승 씨.
시에 더욱 많은 것을 요청할수록 오히려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는 역설을 생각해 보게 하는 심사 과정이었다. 현대시가 그 어떤 때보다 ‘실재(혹은 실제)에 대한 열정’을 감당해 내야 하는 무게와 싸우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당한 질량을 보유했으리라는 기대를 담은 관념어의 나열로도, 언어 경제를 잃은 장황함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이번 본심 대상작을 중심으로 단적으로 말하자면 늘이고 포개는 것보다 오히려 줄이고 깎는 일이 더욱 관건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눈에 띈다.

‘귓속’은 단정한 진술과 매끄러운 비유로 우선 관심을 끌었다. 경청의 무게와 깊이가 절실한 이즈음의 사정과도 잘 부합하는 주제다. 그러나 ‘이 대목이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대목들이 특히 시의 후반부에 여럿 눈에 띄었다. 시는 일자천금의 세계이기도 하거니와 절제를 화두로 언어와 씨름하는 장르이다. ‘결심과 결실’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했다. 시의 내적 논리가 무리 없이 전개되며 종반부의 전언을 독자가 수긍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러나 종반부로 치닫기 직전에 제시된 부분의 느슨함과 평이함 그리고 장황함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법하다.

‘사력’은 그런 점에서 최종적으로 검토의 대상이 될 만했다. 할머니의 죽음을 중심 소재로 하되 사건을 세세히 묘사하는 대신 소소한 이미지들을 그러모아 사건에 육박하게 하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독자의 사유를 이끌어내는 것에도 성공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능숙하게 쓰인 작품이다. 그 숙련에 더 많은 모험이 함께하기를 기대하며 축하의 악수를 건넨다.

정호승 시인·조강석 문학평론가(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춘문예 100주년#장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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