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100주년]영화평론 ‘누가 관객이어야 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일 01시 40분


플롯-시점-인물 논하는 건, 늘 새로운 모험
● 당선소감

문은혜 씨
문은혜 씨
오랫동안 문학을 사랑해 왔다. 언어의 간극 사이로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기쁘고, 행복했다. 이미지 없이도 문자가 둥둥 흘러가는 세계에서 플롯과 시점과 인물을 논하는 일은 늘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설렘이었다.

언어 사이를 누비며 상상하는 것과 다르게, 영화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감각을 통해 좀 더 입체적인 화려한 감각의 선물을 받는 것 같았다. 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좋아하지만, 어떤 점에서 이 영화가 왜 좋다는 표현을 하기 어려웠다. 매년 개최되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집 근처에 있는 영화의 전당은 그런 내게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다양하게 기획된 영화를 접하게 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영화라는 장치에 관해 어린애가 조금씩 말을 배워가듯 영화를 읽는 법을 익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왜 평론을 쓰려고 하냐’는 말에 쭈뼛쭈뼛 말을 못 한 적이 있다. 이후로 그 질문은 내 마음에 아직 남아 있다. 여전히 평론의 자리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해 고민이 있다. 아직 내겐 부끄러움이고, 마음의 빚을 지는 자리다. 원전 텍스트에 빚을 지고, 이론에 빚을 지고, 여러 평자들의 관점에 빚을 진다. 그 틈새로 내가 경험한 영화적 감각을 잠시나마 비출 뿐이다. 이것만으로, 내가 쓰는 이야기가 작품의 가치와 미학을 논하는 평론이 될 수 있을까 두려움과 떨림이 있다. 평론의 자리는 어떠해야 하는가는 내게 남은 과제가 될 것이다.

이제 한 걸음을 내딛지만, 이미 고마운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한결같이 좋은 스승으로 남아주시는 박훈하 교수님,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며 동고동락한 선후배들,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사랑하는 가족들, 부족한 글을 읽고 가능성을 타진해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1974년 부산 출생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성대 국어국문학과 석사 및 박사


담장 안과 밖… 이상적 관객의 가능성 보여줘


● 심사평

김시무 씨
김시무 씨
작품이 좋으면 그에 관한 담론도 풍부해지기 마련이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올해 개봉된 작품들 가운데, 평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거론된 작품에 속할 것이다. 이번 응모작 중에서도 다섯 편이 상기 작품을 다루고 있었다. 작품 자체가 나치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으므로, 그에 따른 비평적 화두 역시 ‘악의 평범성’으로 수렴되고 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저쪽에서는 악의 끔찍함이 자행되고 있다. 아니, 자행되고 있다고 추정된다. 카메라는 결코 그 담장 밖을 비추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쪽에서는 그야말로 평온하고 안락한 일상생활이 영위되고 있다. 그래서 관객은 담장 안의 이미지에만 집중하게 된다. 미장센 자체가 가해자를 관찰하는 시선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객의 시선이 담장 안을 집중할수록, 담장 밖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총소리는 관객의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괴리 속에서 관객은 그야말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에 쉽사리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개념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기존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평자의 질문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이 영화의 관객은 도대체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역사의식이 증발되고, 적극적인 관객이 소멸되고 있는 세태 속에서 심미적인 감동을 경험하고 성찰하고 실천할 관객은 언제쯤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그러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평자는 그러한 이상적 관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김시무 영화평론가

#신춘문예 100주년#문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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