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100주년]문학평론 ‘테크노밸리의 육교를 건너는 동안’

문학이 하는 말,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파
● 당선소감

정의정 씨

나는 내가 찌질해서 못 견디겠을 때 소설을 읽는다. 소설에는 꼭 나 같은 사람이 나온다. 나, 소설 같은 삶을 살고 있었구나, 이런 착각을 위안 삼는다. 나는 사람을 미워하고 세상에 분노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래도 그런 사람과 세상이 문학을 통과하면 어느 한 구석이 꼭 (징그럽게도)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무언가를 이해하려다 실패하고 분노하기를 그만두지 못한다.

문학을 읽으면 현실이 그럭저럭 살 만하다고 느끼…지도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지도 않고 대단한 영웅이 되어야겠다고 각성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럼에도 계속 읽고 쓰는 것은, 어찌 됐든 잘살고 싶어서다. 별 볼일 없는 나에게도 문학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고, 그건 비단 나에게만 해당하는 말 걸기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문학이 하는 말을 다른 이들에게도 최대한 많이 들려주고 싶어진다.

더 많은 사람들과 글을 통해 만날 수 있게 해주신 심사위원분들, 그리고 장류진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매번 내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는 정진, 글 쓰다가 생리적 욕구를 포기할 뻔한 나를 보필해 주어 고맙다. 앞으로도 같이 먹고 자고 커가자! 스무 살 때부터 같이 읽고 쓰고, 욕하고 화내고 웃으며, 너 나 없이 우리가 된 능금과 난독, 너희들이 나를 키웠다. 엉성한 초고에도 피드백과 칭찬을 아낌없이 주신 민아 세영 슬미 윤기 하정 선생님께도 같이 공부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황종연 선생님은 문학을 읽는 것이 기호로 가득 찬 세상을 읽는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셨다. 깊고 넓은 지혜를 나누어주심에 감사드린다. 선생님께 문학을 배우고 있음은 나의 자랑거리다. 나의 최종 독자는 우리 가족이다. 사랑하는 양우 미정, 그리고 곧 0살이 될 뽀뽀도 읽을 수 있게 계속 써보겠다. 마지막으로 국회 앞, 남태령, 용주골에 있었던 많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내가 목숨을 빚졌음을 고백한다. 착실히 갚겠다.

△1997년 제주 출생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작품과의 치열한 대결 통한 논리적 입증 돋보여

● 심사평

김영찬 씨(왼쪽)와 신수정 씨.

예년에 비해 늘어난 응모작 가운데 우리가 주목한 작품은 ‘사물의 존재와 구원의 가능성-진은영론’과 ‘고요한 먹구름과 멜랑콜리커가 제 삶을 견디는 방법-김경후론’, 그리고 ‘테크노밸리의 육교를 건너는 동안-장류진 소설의 희극성 조망하기’ 등 세 편이었다. 이들은 비평적 소양을 드러내는 적절한 문체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 문학 지형에도 밝은 안목을 자랑하고 있어 쉽게 당선작의 테두리 안에 들 수 있었다.

‘사물의 존재…’는 담담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진은영 시에 나타나는 사물과 존재의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다만 지나치게 해설에 치우쳐 시를 장악하는 메타적 시선이 아쉽게 여겨지는 지점이 없지 않았다. ‘고요한 먹구름…’은 다소 난해한 김경후의 시를 통해 ‘말 걸기’로 구체화되는 ‘관계적 존재론’을 이야기한다. 오늘날 윤리의 출발점을 시를 통해 추출하고자 하는 열정을 높이 살 수 있었으나 이론 취향의 관념성이 내내 시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

올해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테크노밸리…’는 하나의 어젠다를 설정하고 이를 작품과의 치열한 대결을 통해 논리적으로 입증해 내려는 분석적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장류진의 소설에 대한 현장의 반응을 모르지 않으나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키워드를 보태려고 하는 비평적 열정 역시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판교 테크노밸리의 육교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모종의 ‘조망 효과’가 우리 소설사에 덧입혀지게 되었다. 수상작은 이 시선이야말로 “어리석고 바보 같으면서도 어딘가 애처로운 신자유시대 사람들을 웃음으로 감싸”안을 수 있는 태도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 결론을 믿어보기로 했다. 수상을 축하한다.

신수정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김영찬 계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