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묻지도 않은 신상 내력을 하염없이 읊는가 하면, 정작 중요한 자리에서는 상대방과 눈도 못 마주치고 발치만 쳐다보며 속삭이곤 합니다. 그중 최악은 피하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싸워야 할 때인데, 그럴 때면 머릿속은 하얘지고, 채 한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며, 어떨 때는 눈물까지 고이곤 합니다.
그러니까 희곡은 저에게 판타지입니다. 물론 희곡 속에서 인물들이 자기가 할 말을 똑 부러지게 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희곡 속에서도 인물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지 못하고, 서로를 오해하고, 싸워야 할 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후회하곤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전달되지 않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오해에서 이해로 넘어가기 위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결말에 이르기 위해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고 도망친 대화의 역사와 같은 저와 비교했을 때 희곡의 인물들은 훨씬 더 용감하고, 끈기 있고,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희곡의 편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이번 당선이 저에게 적어도 그 정도의 용기는 내 보라는 응원같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겁쟁이가 가질 수 있는 용기로 계속 써 나가겠습니다.
△1992년 부산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불확실’을 밀도 높은 완성도로 짚어
● 심사평
시대의 ‘불확실’을 확실히 드러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올해 응모작에는 ‘불안함’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 있었다. 우선 사회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몇몇 혼란스러운 사회 통념을 관념적으로 다루는 작품이 있었으나 소수였다. 이에 비해 ‘알 수 없는 이유’가 태연히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시골을 배경으로 하거나 노인을 등장인물로 삼는 경우도 양적으로 많았다. 무엇보다 문학적 메타포를 다시 살려내려는 경향들이 뚜렷했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상상을 공유하려는 공상과학(SF)은 특히 인공지능(AI)에 집중되어 좀 더 ‘현재’로 내려온 것이 고무적이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중간 수준의 작품들은 줄고, 준수한 작품과 아직 글쓰기가 덜된 작품은 많았다. 이 중 아쉬운 것은 많은 작품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쓰인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연극의 표현 방식이 과거보다 풍성해져 서사를 전개할 때 다양한 방식들이 가능해졌지만,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오히려 관객을 깊이 깨우는 ‘알맹이’를 탄생시킨다는 것은 희곡만의 장점이라는 생각이다.
‘이명’, ‘고도 스돕도 아닌’, ‘괜찮으세요?’, ‘2025년 신춘 문예 당선자 귀하’, ‘하여가’가 언급되었지만, 심사위원들은 단번에 ‘없는 잘못’을 선택했다. ‘없는 잘못’은 시대의 불확실을 토로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수준을 넘어 ‘불확실’ 자체를 밀도 높은 극적 완성도로 짚고 있었다. 마치 거기서부터 출발이라는 듯 ‘불확실’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또한 선명하여 단연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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