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뱀의 해’… 전통문화 속의 巳
‘십이지신’ 중 영리함-지혜 상징 동물… “민가에선 재물 지키는 수호신 대접”
뱀 지팡이, 서양선 의료-의술 상징
민속박물관, ‘만사형통’ 특별전
“이곳 풍속에 사람들이 뱀을 몹시 두려워해 신이라 받들고, 뱀을 보면 주문을 외우며 감히 쫓아내거나 죽이지 않는다.”
조선 중기 문신으로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한 김정(1486∼1521)이 ‘제주풍토록’에 쓴 글이다. 뱀만큼 긍정과 부정의 이미지가 엇갈리는 동물이 또 있을까. 뱀의 생김새와 공격적인 성향, 치명적인 독은 오랫동안 인간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뱀이 허물을 벗고 성장하는 모습, 겨우내 죽은 듯 사라졌다가 봄에 다시 깨어나는 모습은 경이로 받아들여졌다. 2025년 뱀의 해인 을사년(乙巳年)을 맞아 ‘뱀의 문화사’를 살펴봤다.
● “재물 지키는 수호신” 지혜와 풍요의 상징
뱀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여섯 번째 동물로 영리함과 지혜를 상징한다. 사시(巳時)는 오전 9∼11시에 해당하며, 방위는 남남동쪽이다.
민간 신앙에서 뱀은 집안의 재물을 지키는 ‘업신(業神)’으로 대접받았다. 천진기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 위원장은 “뱀은 집안의 재물인 곡식을 훔쳐 먹는 쥐를 주로 잡아먹는다. 인간과 먹이사슬의 경쟁자인 쥐를 퇴치하는 이로운 존재”라며 “민가에선 재물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대접받았다”고 설명했다.
뱀은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고, 구불구불한 몸으로 이곳저곳을 오가며, 한 번에 10여 개의 알을 낳는다. 이에 강한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상징하기도 했다. 고구려 무덤 삼실총(三室塚)의 세 번째 방 동벽과 남벽엔 ‘교사도(交蛇圖)’가 그려져 있다. 두 마리 뱀이 마주 보고 얽혀 있는 모습이다. 서로 꼬리를 휘감되 배 부분이 떨어져 있고, 다시 가슴 부분에서 얽혀서는 머리가 맞보고 있는 형상이다. 이는 자연 생태계에서 뱀이 짝짓기할 때 모습과 같다.
무덤에 뱀 그림을 그려 넣은 건 불사(不死), 재생을 바라는 인간의 염원이 담겼다. 죽은 듯 겨울잠을 자다가 봄에 다시 살아나는 뱀은 부활과 영생을 의미했다. 사신도(四神圖)에서 북방의 수호신인 현무는 뱀과 거북이 합체한 모습이기도 하다.
신라 시대엔 뱀이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모양의 토우를 무덤에 껴묻거리(부장품)로 넣기도 했다. 삼국유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혁거세왕과 왕후를 장사 지내려고 하는데 “큰 뱀이 쫓아와 방해하므로 오체(五體)를 각각 장사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김수로왕의 묘에서 도적들이 금옥(金玉)을 훔치려고 하자 “30여 척이나 되는 큰 뱀이 번개 같은 안광(眼光)으로 사당 곁에서 나와 8, 9명의 도적을 물어 죽였다”고도 나온다.
● 아스클레피오스 지팡이의 뱀 조각
국내뿐 아니다. 중국 문화는 창조 신화부터 뱀과 관련이 깊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는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의 모습으로 묘사됐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료 및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는 뱀 한 마리가 감겨 있는 형태다. 이 지팡이는 서양에서 의료, 의술을 상징했다. 오늘날 세계보건기구(WHO)의 문장이나 군의관 배지에도 뱀이 감긴 도안이 있다. 유럽의 병원과 약국의 문장(紋章)에 치료의 신, 의술의 신인 ‘뱀’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역대 을사년엔 중요한 역사적 사건도 발생했다. 이순신 장군이 탄생(1545년)했으며 을사늑약(1905년)과 한일 기본조약(1965년)이 체결됐다. 을사년 뱀띠 해를 맞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선 세계 문화 속 뱀에 얽힌 상징과 의미를 소개하는 특별전 ‘만사형통(萬巳亨通)’을 3월 3일까지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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