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100주년/동화 당선작]눈이 마주친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일 01시 40분


나혜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어제 혼자 걸을 때는 그렇게도 멀었던 집이 너무나도 짧았다.
“내일 나랑 같이 밥 먹자.”
한국어인 이 한 문장이 미국에서 들었던 그 어떤 영어보다 좋았다.
“내일 꼭 같이 학교 가자! 내일 보면 내가 너에게 먼저 웃어줄게!”》


〈그 아이와 가장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은 그 아이가 처음 반으로 들어올 때였다.〉

“김하은. 담임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래.”

나는 문득 저 아이가 학교에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교무실이 어딘지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알아.”

무안하게도 그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떠난 그 아이 때문에 어정쩡하게 열었던 입을 닫았다. 머쓱하게 두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돌렸다. 전학 온 지 이틀 만에 이미 반에서 재수 없는 사람으로 찍힌 아이다웠다.

우리 학교는 꽤나 깊은 시골에 있다 보니 학기가 끝나는 시점에는 전학을 잘 오지 않는다. 사실 그냥 전학 자체를 잘 오지 않아 전교생이 서로를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런 곳에 새로운 전학생은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학교 안에서 자기들끼리만 노는 예쁘다고 유명한 선배들도 왔었으니 학교 전체가 아이를 구경하러 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질문에 “어”, 아니면 “그래”밖에 안 하는 아이에게 빠르게 관심은 식어갔고, 남은 것은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뒷담화뿐이었다. 몇몇 친구들은 시골 학교라 무시하는 거 아니냐며 계속 투덜거리기도 했었다. 머쓱해하는 나를 본 친구들이 다 같이 몰려와서 아이에 대한 불평을 하길래 그냥 어깨만 으쓱해 주었다.

“뭐,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뭐.”

그다음 수업이 이동수업이라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그 아이에 관한 생각은 곧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 아이와 가장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은 내가 처음 5학년 1반으로 들어갈 때였다.〉

5살 때부터 외국에 나가 살아서 그런가, 오랜만에 보는 한국은 나의 나라인데도 참 낯설고 어색했다. 미국에서 한글을 배우긴 했지만, 막상 주위에서 영어가 아닌 한국어가 들려오자 웃던 얼굴이 굳고 대답이 자동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새로 가게 된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웃고 있었지만, 선생님의 들어오라는 한국어에, 들어가자마자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한국어에 안면근육은 점점 굳어만 갔다.

그래서 그런지 온 지 며칠이 되었지만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니, 처음에는 나름 말을 많이 걸어주러 왔던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는 가끔 와서 비웃는 무서운 언니들이 오는 것 말고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알아듣기 너무 빠르고 어색한 한국어 사이에서 나는 너무도 외로웠다.

‘야, 김하은. 담임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래’라며 낯선 내 이름이 들려왔을 때 나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미국에서 사용하던 ‘에밀리’라는 이름이 갑자기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내가 일어나자, 나를 부른 유사랑이라는 반장이 교무실이 어디인지 알려주려는 듯 말을 덧붙였지만, 나도 모르게 안다고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사실 정확하게 알진 못하지만, 한국어로 들으면 더 헷갈려서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어제 이미 교무실에 가보기도 했었기에 ‘어제 선생님을 따라왔던 길을 거꾸로 생각해서 가면 되겠지’ 하고 일단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눈을 마주쳤을 때 그 아이는 내 눈을 피했다.〉

“유사랑! 선생님이 하은이는 학교를 잘 모르니까 같이 다니라고 했잖니.”

지금 이게 무슨 일일까.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교무실을 안다고 한 그 아이는 담임 선생님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를 쳐다보자, 내 눈을 슬쩍 피했다.

“사랑아, 선생님 보지 않고 뭐 하는 걸까? 선생님이 말하고 있잖아, 지금.”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 선생님께 그 아이가 교무실 가는 길을 안다고 했었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입만 뻐끔거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들께 단 한 번도 혼난 적이 없었다. 항상 좋은 학생에, 좋은 반장이었는데. 선생님께 처음으로 혼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아 선생님 눈치를 보며 얼른 대답하라는 친구들의 손짓도 보이지 않았다.

“유사랑, 선생님 말을 아예 듣지도 않는구나.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오늘 방과 후에 청소하고 집에 가렴.”

그 말과 함께 그 아이를 데리고 교실에서 나가 버린 선생님의 뒷모습을 계속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앞이 흐려지며 차오르는 눈물에 고개를 숙이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울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이런 일로 울면 나만 우스워지리라. 아까처럼 그 아이를 험담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다시 눈을 마주쳤을 때 나는 그 아이의 눈을 피했다.〉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잘못한 것은 나인데 왜 네가 혼나는 건지. 눈을 피하는 것이 아닌 사과를 해야 했다. 아니면 네 잘못이 아니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거나. 혼자 교무실에 갈 수 있다고 자만했다. 길을 잃어 점심시간까지 선생님을 찾아 학교 안을 헤매고 다녔다.

‘유사랑, 선생님 말을 아예 듣지도 않는구나.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오늘 방과 후에 청소하고 집에 가렴.’

아이가 혼나게 된 것은 전부 나 때문이다. 나는 당황하여 멍하니 서 있다가 교무실로 돌아가는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교실을 나와 버렸다. 또 사과를 하지 못했다. 미안해, 미안해.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그 아이에게 사과했다. 그 아이에게 나의 마음이 닿길 바라며.

“선생님, 반장은 잘못한 게 없어요. 제가 혼자 간다고, 교무실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했어요.”

“사랑이는 선생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어서 청소하게 된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도 괜찮아. 선생님도 사랑이가 얼마나 좋은 아이인지 알고 있단다.”

〈다시 눈이 마주친다면 내가 그 아이에게 먼저 웃어줄 수 있을까?〉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우울하게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오늘은 지각한 사람도 없어서 나 혼자 이 넓은 교실을 청소하게 되었다. 반 친구들이 하나둘 나가는 걸 보니 한숨만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쟤 그래도 양심은 있나 봐.”

학원 때문에 도와주지 못하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우울해하는 친구가 빗자루를 꺼내고 청소하려는 그 아이를 눈짓했다. 나는 잠시 그 아이를 응시하다가 눈이 마주칠 것 같자 고개를 돌렸다.

간다며 인사하는 친구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고는 그 아이와 멀찍이 서서 청소를 시작했다. 그 아이가 없는 것처럼, 그 아이가 안 보이는 것처럼 묵묵히 청소만 해나갔다. 끝까지 함께 청소하겠다는 듯이 남아있는 그 아이 때문에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그 아이가 청소한 곳까지 아직 더럽다는 듯 그 위로 대걸레질을 한두 번 더 하고는 가방을 챙겨 반을 나왔다. 뒤에서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눈이 마주친다면 내가 그 아이에게 먼저 웃어주어야겠다.〉

“사랑아! 유사랑!”

그 아이를 여러 번 불러보았지만 내 목소리가 닿지 않았나 보다. 아이는 저 밑으로 먼저 내려가 버렸다. 그 아이가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나와 멀어지는 한 발짝이 그 아이와 나의 사이 같아 얼른 가방을 챙겨 뛰어 내려갔다. 저 앞에 그 아이가 핸드폰을 보며 걸어가는 것이 보여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불렀지만 아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큰 소리로 외쳤다.

“네가 뒤돌아보고 싶지 않다면 그냥 말할게! 미안해! 나 때문에 너만 피해를 보게 된 것 같아. 미안해. 네가 용서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 정말 미안해.”

“왜 내가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을 때는 길을 안다고 했었어?”

바로 앞에서 들리는 말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내가 한국어를 잘 몰라서. 네가 말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질 것 같았어…. 그리고 어제 이미 가봤으니까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그러면 같이 가자고 할 수 있었잖아.”

아이의 높낮이가 없는 말투 뒤에 붙은 짧은 한숨에 점점 더 불안해져서는 위축되어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너는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서 살았다고 한국어를 잘 몰라?”

“잘 모른다기보다는 아직은 어색해서 말이 빠르면 잘 못 알아들어. 천천히 말해주면 다 알아들을 수 있어.”

내가 아이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으며 답하자 그 아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내 손을 잡고 빠르게 걸었다.

“집 어디야? 같이 가자.”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람과 기쁨으로 얼굴이 붉어져만 갔다. 사과를 받아주는 걸까? 너무나도 기뻐 얼굴에 핀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그게 너무 느껴져 표정 관리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끝까지 내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만발하여 쉽게 지지 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그 아이와 나 사이에는 그 어떠한 대화로 오가지 않았지만 둘 중 누구도 먼저 손을 놓지 않았다. 손 한 번 잡았다고 무언가 그 아이와 엄청난 사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행복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던가, 어제 혼자 걸을 때는 그렇게도 멀었던 집이 너무나도 짧았다. 어느새 그 아이와 나는 우리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속상했다.

“내일 나랑 같이 밥 먹자.”

지금까지 한없이 낯설었던 한국어였는데, 한국어인 이 한 문장이 미국에서 들었던 그 어떤 영어보다 좋았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바라보자 그 아이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게 무언가 중얼거렸다. 잘 들리지 않아 두 눈을 깜빡이고는 아이의 입술을 읽었다.

“……엄…청나게 좋아하네. 내일 학교도 같이 가든지…?”

입 모양을 유심히 보며 입술을 따라 읽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부끄러운지 아무것도 아니라며 집에 가겠다고 뒤를 도는 아이에게 얼른 잘 가라고 한 손을 들어 좌우로 살살 흔들었다. 그 아이도 손을 들어 내게 답을 해주었다. 흔들리는 그 손을 눈동자로 따라가는데 우리의 손이 서로를 향해 한 번, 또 한 번 흔들릴 때마다 온몸에 한 번, 또 한 번 행복한 온기가 내 가슴 안에서 터져 나왔다.

멍하니 온기를 느끼다가 정신을 차리니 벌써 아이는 저 멀리 멀어져 있었다. 갑자기 아이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에 뛰어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일 꼭 같이 학교 가자! 내일 보면 내가 너에게 먼저 웃어줄게!”

……그 순간, 내 앞에서 웃는 사랑이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이제, 사랑이는 ‘그 아이’가 아니다.

〈나를 향해 예쁘게 마주 웃는 그 아이의 눈과 마주친 순간〉

이제 하은이는 ‘그 아이’가 아니다.

정말 사랑하는 단어 ‘우정’… 항상 함께하길


● 당선소감

나혜진 씨
나혜진 씨
대학교 졸업을 위해 힘껏 달리다가 잠시 쉬며 누워 있는 와중 갑작스레 걸려 온 전화였습니다. 원래 모르는 전화번호는 잘 받지 않는 터라 잠시 고민을 하고 받았는데 당선이라니!!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기회 덕분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제 글이, 제 아이디어가, 제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알아버렸습니다. 항상 꽁꽁 제 품에만 안고 있던 다른 글들도 세상에 공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가족들이 정말로 행복해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족들을 보는 저는 더욱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저희 가족에게 갑작스럽고 행복한 새해 선물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한, 동화 내용부터가 우정에 대한 동화이므로 이 소식을 1월 1일에 들을 친구들에게도 축하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미리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얘들아, 이게 나야…. 장난이고 너희가 있어서 우정에 대한 동화를 쓸 수 있었고 덕분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엄청난 명예를 얻을 수 있었어. 고마워.

우정.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단어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삶에도, 앞으로 걸어갈 삶에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어이며 그만큼 집착하는 단어입니다. 항상 이 단어와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언제나 옆에 있어 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글을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 경기 성남시 출생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동화한국어문화학과 재학


사람에 대한 진지한 태도로 내면 잘 포착해


● 심사평

원종찬 씨(왼쪽)와 노경실 씨.
원종찬 씨(왼쪽)와 노경실 씨.
광화문 그 넓은 거리를 바삐 걸어가든, 동네 아파트 벽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가든 어지러움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시절이다. 그러나 눈으로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는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세상 구석구석에 묻혀 있거나 가려진 삶의 아름다움과 존재의 이유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피투성이 같은 인생이라도 살아 있어야 하는 근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신춘문예 심사는 우리 스스로에게 축복의 시간이기도 하다.

올해에도 300여 편의 작품을 만났다. 치열한(?) 경쟁률만큼이나 작품의 수준도 늘 날카롭다. 아쉬움 속에 많은 작품을 내려놓고 우선 4편을 골랐다. ‘무심코 유죄!’는 무심코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에게 피해를 준 소년의 죄과를 묻는 재판 모습을 그린 것으로 세상의 상호관계로 말미암아 피해자들이 연쇄적으로 늘어나면서 난센스 풍의 과장과 엉뚱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재판 모습이 독특했다. ‘개미와 물소 마루’는 서로 전혀 다른 상황 속에 놓인 두 존재가 우연히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 인간의 삶과 연결되면서 선명한 대비의 효과로 즐거움을 준다.

또 ‘급식 대장’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은 다문화 시대의 소통 문제와 관련된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루었다. 다만 ‘급식 대장’은 오해가 해프닝에 가까운 데 비해, ‘눈이 마주친 순간’은 어긋남에서 비롯된 두 아이의 내면의 변화를 잘 포착한 것이 장점이 되었다.

그래서 ‘눈이 마주친 순간’이 완성미와 이야기의 풍성함은 부족하지만, 글쓴이의 사람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작가의 길을 단단하게 걸어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당선작으로 택했다.

노경실 동화작가·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신춘문예 100주년#나혜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