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지킬 다짐, 어디 있나… 지레 포기하지 말고 오늘부터 다시 ‘금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2일 03시 00분


[한시를 영화로 읊다]〈97〉술 끊겠다는 다짐

우리에겐 매년 반복되는 지키지 못할 계획들이 있다. 폭음하는 사람이 술을 끊겠다는 다짐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조선시대 남효온은 주사로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자 술 끊겠다는 글을 짓고 금주를 맹세했다(‘止酒賦’). 하지만 그 뒤에도 술을 마시고는 다시 술을 끊겠다는 글을 썼다(‘復止酒賦’). 이런 헛된 다짐의 원조는 술 마시길 유달리 좋아했던 도연명이다.

시인은 세상의 부귀영화에 초연한 채 맑고 담박한 삶을 꿈꿨지만, 술에 대한 집착만큼은 버리지 못했다. 술이 아니면 잠들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날마다 마시지 않으면 금단 현상으로 몸이 온전히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할리우드 영화 ‘잃어버린 주말’에서 술로 파멸하던 버냄(왼쪽)은 여자친구 헬렌에게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스카이시네마 DVD 캡처
할리우드 영화 ‘잃어버린 주말’에서 술로 파멸하던 버냄(왼쪽)은 여자친구 헬렌에게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스카이시네마 DVD 캡처
빌리 와일더 감독의 ‘잃어버린 주말’(1946년)에서 주인공인 무명작가 돈 버냄도 술에 빠져 산다. 버냄은 동생 윅과 주말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싸면서도 창밖에 몰래 숨겨 놓은 술 생각뿐이다. 결국 버냄은 술을 마시기 위해 여행도 가지 않고, 동생은 물론 여자친구와의 약속마저 저버린다. 과거 유망한 작가였지만 지금은 알코올 의존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조차 버거운 버냄의 모습에서 금주의 필요성이 느껴진다.

시는 이례적으로 구절마다 ‘그칠 지(止)’ 자를 반복해서 술을 끊겠다는 다짐을 강박적으로 표현했다. 시인이 일시적 장난으로 이런 시를 쓴 것인지, 아니면 정말 금주하려고 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시에 대해 송나라 소식은 진짜 금주하려 했다고 보고 자신도 술을 끊겠다고 밝힌 반면(‘和陶止酒’), 조선시대 홍석모는 술을 끊지 않았다고 보고 금주가 이렇게 어렵다고 썼다(‘止酒’).

영화 마지막, 술로 스스로를 파멸시켜 가던 버냄에게 여자친구 헬렌은 멈추는 게 다시 시작하는 거라며 술을 끊으라고 권한다. 다시 시작하기 너무 늦었다고 후회하던 버냄도 술잔에 피우던 담배꽁초를 집어넣는 것으로 금주 의지를 드러낸다.

새해를 맞아 지키지 못할 다짐이라 지레 포기하기보다 마음을 다잡고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한시#영화#술#금주#술 끊겠다는 다짐#남효온#잃어버린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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