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말을 더듬는 소년은 학교 가는 게 두렵다. 발표를 해야 하는 날에는 더더욱.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입이 꼼짝도 안 한다. 소년을 데리러 온 아빠는 강가로 이끈다. 소년은 키득거리던 아이들이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빠는 강물이 흘러가는 걸 가리키며 얘기한다.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며 굽이치다가 부딪치는 강물이 보인다. 강물도 매끄럽게 흐르지 않는다. 소년이 말을 더듬는 것처럼. 소년은 학교 발표 때 그 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캐나다 유명 시인 조던 스콧(47)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책읽는곰)의 내용이다. 한 편의 시 같은 글에, 캐나다 그림 작가 시드니 스미스(45)의 서정적인 그림이 어우러져 뭉클한 여운을 선사한다. 2021년 1월 국내 출간된 이 그림책은 4년간 6만 4000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올해의 그림책’으로 뽑혔다. 시드니 스미스는 ‘어린이문학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지난해 수상했다. 이 상은 이수지 작가가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바 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원화 그림은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3월 2일까지 열리는 전시 ‘그림책이 참 좋아’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최숙희 윤정주 김영진 등 국내 작가 20여 명과 시드니 스미스, 구도 노리코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를 출간한 책읽는곰 우지영 주간(53)과 최아라 그림책팀장(35)을 서울 마포구 책읽는곰 출판사에서 지난해 12월 26일 만났다.
우 주간은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가 2020년 현지에서 출간된 지 얼마 안 돼 국내에 들여오기로 마음먹었다. 캐나다, 미국에서 큰 호평을 받기 전이었다. 우 주간은 “내가 읽고 싶고 다른 이에게도 읽히고 싶은 책이어서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판매가 잘 될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말을 더듬는 소년이 주인공이잖아요. 장애를 소재로 한 책은 현실적으로 많이 판매되진 않거든요. 하지만 너무 좋은 책이어서 꼭 내고 싶었어요. 손해를 감당해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우 주간)
마음이 급했던 우 주간은 책 내용을 빨리 번역해 직원들과 공유했다. 모두 찬성했다.
“압축적이고 상징적인 내용에, 선보다는 면을 활용해 그린 그림이 한 폭의 영화 같은 느낌을 줬어요. 조금 다른 아이, 나아가 자신이 지닌 어려움을 어떻게 마주할 지를 잔잔하게 보여주는 게 좋았습니다.”(최 팀장)
판권을 구입하려는 국내 다른 출판사들도 있어 경쟁해야 했다. 앞서 시드니 스미스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괜찮을 거야’가 좋은 반응을 얻은 것도 영향이 컸다. 책읽는곰은 ‘괜찮을 거야’를 2020년 국내 출간했다. 택시들이 빵빵거리고 사이렌이 울리는 등 소음이 가득한 도시에서 혼자 길을 나선 아이가 나온다. 거대하고 차가운 도시에는 어두운 골목, 으르렁거리는 개들도 있다. 눈까지 휘몰아친다. 아이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나선 것. 전단지를 붙이는 아이는 마음씨 좋은 주인이 있는 생선 가게, 성가대 노래가 들리는 교회를 보며 고양이가 의지해도 되는 곳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은 아이의 집 앞에 쌓인 눈 위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 안도감과 함께 미소를 짓게 된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판권을 사오는데 비용이 꽤 들었어요. 저희가 제시한 금액과 함께 ‘괜찮을 거야’가 좋은 성적을 낸 게 함께 고려돼 판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출간이 확정된 후 임선희 대표님이 ‘결과에 대해선 내가 감당하겠다’고 하셔서 든든했습니다.”(우 주간)
김지은 번역가는 원문의 맛을 살리면서도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심했다. 30명으로 구성된 서평단을 운영하고 조던 스콧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소셜미디어로 이를 알렸다. 김 번역가가 참석한 북토크도 열었다. 최 팀장은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말했다. 책은 큰 호평을 받으며 판매에 속도가 붙었고 지금도 꾸준히 나가고 있다. ‘아이가 좋아해 여러 번 봤다’는 리뷰와 함께 ‘아이에게 읽어주다 울컥했다’, ‘내가 어떤 부모인지, 나아가 어떤 어른인지 돌아보게 됐다’는 후기도 많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며 ‘가족과 친구에게 선물했다’는 글도 적지 않다. 우 주간은 “‘김영하북클럽’ 선정 도서가 돼 그림책을 보지 않던 성인들이 그림책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급속도로 위축된 출판계에서 어린이책 출판사는 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우 주간과 최 팀장은 어려움보다는 가능성을 보려 한다. ‘그림책이 참 좋아’ 전시장에는 ‘책의 여백 속에서 뛰놀며 자란 어린이만이 세상의 여백을 자신의 색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는 우 주간의 말이다.
“태어나 처음 접하는 책인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출판계의 최전방이자 최후의 보루예요. 어린이 인구가 줄고 있지만, 그 어린이들이 다 읽을 책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재밌다’는 말이 제일 좋습니다.”(우 주간)
“좋은 책을 만들면 독자들이 알아보고, 책에서 받은 울림을 전해줄 때 가슴이 찡합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가 그런 책이에요. 일할 용기를 줬죠. 이런 책을 계속 만들 수 있게 편집자로 오래 일하고 싶어요.”(최 팀장)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책읽는곰·2021년)는….
소년은 아침마다 자신을 둘러싼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깨어난다. 소나무 까마귀 달…. 하지만 어떤 것도 제대로 말할 수 없다. 소리들은 혀와 뒤엉키고, 목구멍 안쪽에 달라붙는 것 같다. 소년은 학교 가는 게 두렵다. 발표가 예정된 날에는 더욱 그렇다.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입이 꼼짝도 안 한다. 집에 가고만 싶다.
아빠가 소년을 데리러 왔다. 그리고 강가로 이끈다. 소년은 자신의 입을 보며 키득거리던 아이들이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빠는 강물이 흘러가는 걸 가리키며 얘기한다.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며 부딪치는 강물이 보인다. 그렇다. 강물도 매끄럽게 흐르지 않는다. 소년이 말을 더듬는 것처럼. 소년은 학교 발표 시간에 그 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캐나다 유명 시인 조던 스콧이 자전적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시드니 스미스가 그림을 그렸다. 어린 시절 말을 더듬었던 조던 스콧은 학교에서 발표를 하는 날이면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고 한다. 어느 날 강물을 보며 아버지는 말했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자연의 움직임 속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자신의 입이 바깥세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게 됐다고 고백한다.
시드니 스미스는 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과 소년의 내면, 강가 풍경을 서정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어두운 색채와 흐릿하게 묘사된 그림은 소년의 외로움, 두려움을 직관적으로 전한다. 물거품이 일고 굽이치는 강물의 모습이 소년의 눈에 비친 광경은 하나하나 방점을 찍듯 담았다. 햇빛에 반짝이는 강으로 걸어들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네 페이지에 걸쳐 그린 광경은 소년이 꾹꾹 눌러온 감정을 고요하게 폭발시키는 듯하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이 빚어낼 수 있는 놀라운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 원제는 ‘I talk like a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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