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일 때,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역학조사관을 지냈던 사람에게 “미국은 왜 감염자 동선을 파악하지 않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은 누적 사망자가 51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사망자가 많았지만, 지하철 탑승 시간까지 파악하는 우리와 달리 역학조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넓어서 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이동을 통제하고 감염병을 박멸하는 게 아니라, 감염 차단은 노력하되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관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라고 말했다. ‘공간의 크기’가 국가와 도시의 보건 정책은 물론이고, 팬데믹 기간 시민의 삶과 생활방식, 심지어 생명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인이 된 셈이다.
‘공간의 크기’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수백 수천 년간 인간과 함께해 온 예술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관장인 저자는 인간 문명의 집합체인 도시가 그 시대의 문화와 가치관, 인간의 삶을 반영해 온 예술,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어떻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말한다.
각각 특색 있는 15개 도시를 소개했는데, 평양에 대한 묘사가 눈길을 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쓴 건축에 관한 책 중 기념비적 공간에 대한 그의 견해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평양을 만드는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기념비적) 공간에는 초상화나 조각품과 같은 초점이 있어야 하며, 이를 주변이 압도하지 않아야 한다. 그 뒤로는 주변 건물이나 풍경을 차단하는 배경이 있어야 하며… 이것은 초점에다 주의를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15장 평양: 통제 중)
이런 공간 중 하나가 높이 20m가 넘는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이 서 있는 평양 만수대기념비 앞이다. 이곳에 온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거대한 두 부자의 동상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그 앞에서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열광하고 울기까지 한다. ‘도시의 운명을 바꾼 예술의 힘’이란 부제가 소름이 끼친다. 원제 ‘The Power of art’.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