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안으로 손이 쑥’ 확장현실로 체험하는 그림 속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7일 12시 13분


뉴콘텐츠아카데미(NCA) 과정 1기 교육생 출신 강동완 감독이 ‘인 더 픽처’ 전시회의 대표작 ‘사랑하는 딸’을 소개하고 있다. 인터비즈 제공
뉴콘텐츠아카데미(NCA) 과정 1기 교육생 출신 강동완 감독이 ‘인 더 픽처’ 전시회의 대표작 ‘사랑하는 딸’을 소개하고 있다. 인터비즈 제공
공포스러운 그림들로 가득한 갤러리에 갇혔다. 밧줄로 칭칭 휘감은 얼굴,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소녀 등 벽마다 기괴한 그림이 걸려 있다. 다급히 출입문을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없다. 이 기묘한 갤러리를 탈출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림들을 감상하며 작품 속 이야기에 관련된 미션들을 수행해야 한다.

인천국제공항의 체험형 K콘텐츠 상설 전시관 ‘K컬처 뮤지엄’에 전시됐던 ‘인 더 픽처(In the Picture)’의 세계관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뉴콘텐츠아카데미(NCA) 과정 1기의 인텐디드(Intended) 팀(강동완, 고준식, 윤석찬, 정은혜)이 제작한 전시회다. VR(가상현실) 고글을 쓰고 갤러리 매니저가 되어 가상의 화가 말로(Malo)의 작품을 둘러볼 수 있다. 각각의 그림은 말로의 비극적인 인생사를 표현한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슬퍼하는 딸을 그린 작품 ‘사랑하는 딸’이 대표적이다. 갤러리 매니저가 된 관객은 전시회를 탈출하기 위해 출근 일지에 적힌 미션들을 수행해야 한다. 그림 속 인물과 대화하거나, 그림에 손을 넣어 사물을 꺼낸 후 다른 그림으로 옮기면서 해결할 수 있다. 미션이 끝날 때마다 나타나는 공포스러운 효과는 비극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상적이라고 언급된 건 사랑하는 딸과 관련한 미션이다. 눈을 그릴 수 있게 도와달라는 소녀의 요청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극적인 연출로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7일 인 더 픽처를 연출한 강동완 감독은 본지 인터뷰에서 “현실에서 즐길 수 없지만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할법한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가상의 그림 속 세계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VR과 AI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화가 말로와 갤러리의 작품들은 모두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됐다. 말로는 ‘비극적인 화가의 자화상’과 유사한 명령어들을 챗GPT에 반복해서 입력한 결과값이다. 챗GPT가 제시한 이미지들을 종합해 말로의 자화상을 완성했다. 말로라는 이름도 챗GPT가 슬픈 분위기에 가장 잘 어울린다며 추천해 준 발음이다. 자화상을 완성한 후엔 ‘가족’ 등 추가 명령어를 입력해 말로가 그렸을 법한 작품들까지 제작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K컬처 뮤지엄에 전시된 ‘인 더 픽처(In the Picture)’.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K컬처 뮤지엄에 전시된 ‘인 더 픽처(In the Picture)’.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강 감독은 뉴콘텐츠아카데미(NCA)에서 인 더 픽처를 최초로 기획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급변하는 콘텐츠 산업에 필요한 기술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개원한 프로그램이다. 강 감독은 NCA 과정 1기 교육생 출신이다. 팀별로 신기술 기반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PBL(Project Based Learning) 교육을 통해 전시회 제작에 필요한 기술들을 학습했다.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 퍼실리테이터들이 진행과정에서 팀마다 멘토링을 지원한다.

강 감독은 “VR 콘텐츠 프로듀서들을 만나며 인 더 픽처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단계별로 체계적인 피드백을 받았다”며 “다양한 국내 VR 콘텐츠 성공 사례를 함께 분석하며 인터랙션(상호작용) 기획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터랙션이란 관객이 가상현실에 입장 후 퇴장하기까지 새로운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인 더 픽처를 예로 들면 그림별 미션을 수행하며 갤러리를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이 인터랙션이다.

강 감독은 제작사를 방문해 현직자들과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보완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콘텐츠 제작 기업 로커스의 개발팀으로부터 실시간 엔진 활용 방법을 배운 것이 큰 힘을 발휘했다. 실시간 엔진은 게임 배경 등의 가상환경을 설계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다. 3D 공간을 만든 후 사물의 위치, 빛의 세기와 각도 등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현실감 있는 가상환경을 완성할 수 있다.

강 감독은 로커스 개발팀과 진행한 아이디어 피칭이 인 더 픽처로 기획 방향을 수정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디어 피칭에서 VR 추리물 콘텐츠 기획안을 발표했는데 로커스 개발팀이 기술적인 한계로 제작 기간이 3년 이상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며 “현실적인 제작 방안이 필요하다는 피드백을 듣고 고민하다가 빠르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림 생성형 AI를 해법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인 더 픽처의 콘셉트를 ‘AI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회’로 잡은 이유다.

강 감독은 “AI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론 학습과 프로젝트 제작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NCA 과정이 인 더 픽처를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최신 기술로 자신만의 콘텐츠 제작에 도전하고 싶은 이들에게 NCA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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