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우손갤러리, 지난해 서울 개관
대사관저로 쓰던 주택 개조해 전시… “도심 가까워 가난한 미술가 많던 곳”
제이슨 함 갤러리, 주변에 신관 열어
서세옥-라인재단 미술관 등도 준비중
미술 하면 떠오르는 동네들이 있다. 국내 대형 갤러리가 모인 서울 종로구 삼청동, 외국계 갤러리들이 즐비한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청담동. 최근엔 전통적인 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성북구 성북동에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늘어나며 미술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해 12월 대구의 유명 갤러리인 우손갤러리가 성북동에 서울 전시장을 마련하는가 하면, 2017년 성북동에 자리 잡은 제이슨 함 갤러리는 지난해 신관을 열었다. 게다가 서세옥미술관과 라인문화재단 미술관 등도 성북동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미술계는 성북동의 어떤 매력에 빠진 걸까.
● 큰 단독 주택, 전시장으로
갤러리스트들은 성북동의 고급 주택을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주목했다. 서울 도심에 둥지를 틀려면 건물을 새로 짓거나 기존 상가 건물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성북동에선 규모 있는 단독 주택을 근사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우손갤러리 서울관은 50년 넘은 붉은 벽돌 건물을 1년 동안 리모델링했다. 이전까지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관저로 쓰였던 건물이다. 지금은 1·2층은 전시 공간으로, 지하 1층과 3층은 갤러리 고객을 위한 공간이 됐다. 이은주 우손갤러리 디렉터는 “갤러리가 밀집한 삼청동이나 번잡한 강남에 비해 성북동은 차분한 분위기가 강점”이라고 했다.
2017년 성북동에 자리 잡은 제이슨 함 갤러리도 지난해 기존 전시장 옆 건물로 갤러리를 확장했다. 원래는 옆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으려 했는데, 이 건물의 독특한 모양을 본 스위스 출신 현대 미술가 우르스 피셔가 “이곳에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고 해 원형을 유지한 채 사용하고 있다. 건축주가 손수 지었다는 건물은 1층은 동그란 돌벽이, 2층은 유리창이 있다. 피셔는 이 건물을 전부 하얗게 칠하고 개인전 ‘Feeling’을 열었다.
성북동이 전통적 부촌이라는 점도 갤러리를 끌어들이는 요소다. 제이슨 함의 함윤철 대표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보면 부잣집에선 ‘성북동입니다’ 하고 전화 받는 장면이 나와 성북동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며 “이 지역의 터줏대감들도 잠재 고객이겠다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 자연과 문화유산은 미술관으로
“불편한 성북동으로 왜 오라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도심에서 멀지 않다는 것, 수돗물이 아니라 우물물을 먹는다는 것, 꽃이 피고 숲이 있고 단풍이 들고 새가 운다. 달도 산협(山峽)의 달은 월광이 다르다.”
성북동에 살았던 김환기(1913∼1974)가 남긴 글이다. 실제로 김환기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인이 성북구에 살았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은 “도심과 달리 자연이 살아 있고, 과거엔 서울시가 아니어서 집값도 저렴해 가난한 예술가들도 작업실로 삼았다”고 했다.
2009년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도 국내에선 처음으로 자치구가 만든 미술관이다. 1978년 서세옥 김기창 등 예술가들이 만든 ‘성북장학회’가 지방자치단체와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미술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이런 배경도 성북동이 주목받은 중요한 이유가 됐다. 2028년에는 서세옥이 50년 넘게 살았던 한옥 ‘무송재’ 옆에 ‘서세옥미술관’이 개관한다. 미술관 자리는 서세옥의 아들 서도호의 작업실이 있던 곳이다. 2021년 서세옥 유족이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등 3342점을 바탕으로 연구 및 전시도 이뤄질 예정이다. 서세옥의 차남인 건축가 서을호가 미술관 설계를 맡았다.
라인문화재단도 2026년 개관을 목표로 성북동에 약 1만 ㎡ 규모의 현대 미술관을 준비하고 있다. 재단은 미술관 사전 프로그램으로 강남구 삼성동 비영리전시공간 ‘프로젝트 스페이스 라인’에 ‘모든 조건이 조화로울 때’를 열고 있다. 이 전시는 조경 디자이너 박소희와 미술가 박기원을 초청했는데, 성북동 미술관에서도 자연이 중요한 요소가 될 예정이다. 고원석 디렉터는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넓은 정원을 보유한 현대 미술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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