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에 끼워놓은 들꽃 한 송이… 순박한 우정에 ‘뭉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6일 03시 00분


[한시를 영화로 읊다]〈98〉순박한 친구 생각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아마드는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짝꿍 네마자데 집을 찾아 헤맨다. 
백두대간 제공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아마드는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짝꿍 네마자데 집을 찾아 헤맨다. 백두대간 제공
전통 사회의 어린이들은 글공부를 하면서 한시 쓰는 연습을 많이 하곤 했다. 어린이가 쓴 한시는 어른의 생각과 글쓰기를 본뜬 것이기는 하지만, 아이다운 솔직한 감정이 꾸밈없이 드러나기도 한다. 조선시대 신계영(辛啓榮·1577∼1669)이 열 살 때 쓴 작품도 그런 예다.

시인은 이웃집 사는 우인백이란 친구를 날씨가 추워져 만나기 힘들게 되자 위와 같이 썼다. 열 살 먹은 어린 시인인 만큼 단순하고 표현 기교라 할 것도 없지만 진심이 드러난다. 자신과 한 몸 같은 벗을 그리워하며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봄을 학수고대하는 소년의 마음이 웃음 짓게 한다.

이 시처럼 친구에 대한 소년의 순박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영화로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년)가 있다. 이란의 청소년 지능개발 연구소가 제작한 이 영화는 친구 네마자데의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 아마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두 소년의 관계는 아마드가 함께 뛰어가다 넘어진 짝꿍 네마자데의 다리를 수돗물로 씻어주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시처럼 한 몸같이 아끼는 친구인 듯하다.

수업시간에 네마자데는 선생님께 숙제를 공책에 쓰지 않았다고 혼난 뒤 눈물을 흘리며 상심한다. 집에 와서야 네마자데의 공책을 잘못 가져왔다는 사실을 안 아마드는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나서지만 네마자데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아마드는 주소도 모른 채 계단이 있고 죽은 나무가 한 그루 있는 파란 대문 집이란 단서만을 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밤늦게까지 친구의 집을 찾아 헤맨다.

시에서 친구를 만나고픈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꽃피고 버들 흐드러진 봄이 인상적이라면, 영화에선 친구의 집을 찾아 아마드가 오르내리는 지그재그로 난 길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드는 밤늦게까지 낯선 동네를 구석구석 뒤졌지만 끝내 친구의 집을 찾는 데 실패한다. 아마드는 공책이 없어 숙제를 못 할 네마자데가 선생님께 또 혼날까 봐 걱정한다. 아마드는 저녁도 거른 채 밤새 숙제를 대신해서 숙제 검사 때 네마자데를 구해준다.

영화 마지막 아마드가 네마자데의 공책에 끼워놓은 들꽃 한 송이가 클로즈업될 때 관객은 그 순박한 우정에 뭉클해진다. 감독은 출연자들의 진실한 힘이 표현될 수 있게 놓아두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시에서 어떠한 가식이나 기교도 없이 꽃 피고 버들 흐드러질 봄을 고대한다는 담백한 표현이 주는 울림도 마찬가지다. 한시와 영화에 담긴 순박한 친구 생각이 우리 마음도 따뜻하게 만든다.

#한시#영화#우인백에게#신계영#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순박함#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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