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사회의 어린이들은 글공부를 하면서 한시 쓰는 연습을 많이 하곤 했다. 어린이가 쓴 한시는 어른의 생각과 글쓰기를 본뜬 것이기는 하지만, 아이다운 솔직한 감정이 꾸밈없이 드러나기도 한다. 조선시대 신계영(辛啓榮·1577∼1669)이 열 살 때 쓴 작품도 그런 예다.
시인은 이웃집 사는 우인백이란 친구를 날씨가 추워져 만나기 힘들게 되자 위와 같이 썼다. 열 살 먹은 어린 시인인 만큼 단순하고 표현 기교라 할 것도 없지만 진심이 드러난다. 자신과 한 몸 같은 벗을 그리워하며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봄을 학수고대하는 소년의 마음이 웃음 짓게 한다.
이 시처럼 친구에 대한 소년의 순박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영화로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년)가 있다. 이란의 청소년 지능개발 연구소가 제작한 이 영화는 친구 네마자데의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 아마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두 소년의 관계는 아마드가 함께 뛰어가다 넘어진 짝꿍 네마자데의 다리를 수돗물로 씻어주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시처럼 한 몸같이 아끼는 친구인 듯하다.
수업시간에 네마자데는 선생님께 숙제를 공책에 쓰지 않았다고 혼난 뒤 눈물을 흘리며 상심한다. 집에 와서야 네마자데의 공책을 잘못 가져왔다는 사실을 안 아마드는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나서지만 네마자데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아마드는 주소도 모른 채 계단이 있고 죽은 나무가 한 그루 있는 파란 대문 집이란 단서만을 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밤늦게까지 친구의 집을 찾아 헤맨다.
시에서 친구를 만나고픈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꽃피고 버들 흐드러진 봄이 인상적이라면, 영화에선 친구의 집을 찾아 아마드가 오르내리는 지그재그로 난 길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드는 밤늦게까지 낯선 동네를 구석구석 뒤졌지만 끝내 친구의 집을 찾는 데 실패한다. 아마드는 공책이 없어 숙제를 못 할 네마자데가 선생님께 또 혼날까 봐 걱정한다. 아마드는 저녁도 거른 채 밤새 숙제를 대신해서 숙제 검사 때 네마자데를 구해준다.
영화 마지막 아마드가 네마자데의 공책에 끼워놓은 들꽃 한 송이가 클로즈업될 때 관객은 그 순박한 우정에 뭉클해진다. 감독은 출연자들의 진실한 힘이 표현될 수 있게 놓아두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시에서 어떠한 가식이나 기교도 없이 꽃 피고 버들 흐드러질 봄을 고대한다는 담백한 표현이 주는 울림도 마찬가지다. 한시와 영화에 담긴 순박한 친구 생각이 우리 마음도 따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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