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한 당신, 빨리 녹초 되는 건 예민하기 때문…‘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6일 11시 00분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배려심 많고 다른 이들의 감정을 살피며 편하게 해줘 무던하고 둥글둥글하다는 말을 듣는다. 한데 금방 기력이 소진되고 긴장감과 불안감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당신은 예민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뜻밖이라고?

통상 날카롭게 반응하고 좋고 싫은 걸 명확하게 표현하며 짜증을 자주 내는 사람을 예민하다고 여긴다. 이런 사람은 ‘예민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성격이 예민한’ 사람은 감각 기관이 민감해 주변 자극을 빠르게 흡수한다. 자신의 감정은 물론 타인의 감정도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불편해지는 게 싫어서 참고, 부탁도 거절하지 못한다. 남보다 몇 배는 힘들지만 꾹꾹 누르다 에너지가 금방 바닥나는 것이다.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서스테인)는 예민한 성격을 분석하고 이로 인한 어려움과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HSP는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Highly Sensitive Person)을 뜻한다. 힘든 상황을 겪다 책을 통해 자신에 예민하다는 걸 알게 됐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출간된 이 책은 입소문이 나면서 연말까지 5개월 만에 3만8000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책 표지. 서스테인 제공

책을 쓴 최재훈 작가(44)를 10일 전화 인터뷰하고 편집자인 정지은 서스테인 대표(42)를 이날 서울 마포구 서스테인 출판사에서 만났다. 성균관대에서 심리학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심리이론 석사과정을 이수한 최 작가는 10년 넘게 블로그 ‘무명자의 심리학 광장’에 글을 올리고 있다. 심리코칭센터도 운영한다. 최 작가는 “제 자신이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져서 많이 힘들었다.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한 측면도 있어서 이 내용을 블로그에 꾸준히 올렸다”고 말했다.

정 대표도 심리학을 전공했다. 12년 동안 편집자로 일하다 2021년 1인 출판사 서스테인을 차렸다. 정 대표는 “심리학 책을 만들고 싶어 주제를 찾다 ‘무명자의 심리학 광장’을 보게 됐다. ‘남들은 내가 예민하다는 걸 모른다’는 꼭지를 보고 문장이 와 닿아서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최 작가에게 2023년 10월 연락했다. 최 작가는 선뜻 수락했다. 최 작가는 “예민한 행동을 하면 예민한 성격이라고 여기는 인식을 바로 잡고 싶었다.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예민하다면 도울 방법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예민한 사람은 육아가 더 힘든데, 상담자 중 모성애나 부성애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닌지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들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 작가도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이전에는 서로 몰랐던 최 작가와 정 대표는 책 구성 방식, 원고 내용 등에 대해 손발이 척척 맞아 작업이 빠르게 진행됐다. 정 대표는 제목을 정하는데 특히 고심했다.

“차별화된 제목이 필요했어요. 예민함이라는 단어는 넣지 않으려 했고요. 많은 이들이 공감할 내용을 찾다 예민한 사람들은 에너지가 빨리 고갈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부제 ‘무던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예민한 HSP를 위한 심리학’을 통해 예민함을 다뤘다는 걸 설명했고요.”

표지는 편안함을 주는 녹색으로 디자인했다. 정 대표는 출간 후 카드 뉴스를 만들어 소셜 미디어에 꾸준히 올렸다.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라고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책 뒷날개에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라고 쓰고 △내가 손해 보더라도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게 좋다 △상대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하고 사는 게 버겁다 등 항목을 넣었는데 이를 소셜 미디어에 올리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1차 타깃 독자는 자신이 예민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사람, 2차 타깃은 자기가 예민한지 모른 채 갈등이 싫어 희생하는 사람으로 잡았다.

“문장마다 형광펜을 가득 칠한 사진을 올린 독자들이 많았어요. 책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예민한 사람인 줄 알았다는 반응도 적지 않아 뿌듯했습니다.”(정 대표)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를 쓴 최재훈 작가. 서스테인 제공

“나만 이런 게 아니었다”는 리뷰도 많다. 한 독자는 “나를 비롯해 독서모임 참가자 모두가 책 내용의 일정 부분이 자기 얘기라고 했다”고 썼다. 최 작가는 “우리나라는 개인보다는 집단과 관계를 중시해 조화와 갈등 줄이기를 강조하다보니 예민한 사람이 참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예민한 사람은 자기 기질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흡수하고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하루를 망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유를 모른 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만 꾹꾹 누르다 번아웃되거나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요. 원인, 즉 자신이 예민하다는 걸 알면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습니다.”

책에는 예민한 기질을 진단하는 표가 있다.


<나는 얼마나 예민한 사람일까?>

1. 나는 주위에 있는 미묘한 것들을 인식하는 것 같다.
2.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
3. 통증에 매우 민감하다.
4. 바쁘게 보낸 날은 침대나 어두운 방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숨어 들어가 자극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5. 카페인에 특히 민감하다.
6. 밝은 빛, 강한 냄새, 사이렌 소리 같은 것들에 의해 쉽게 피곤해진다.
7. 풍요롭고 복잡한 내면 세계를 지니고 있다.
8. 큰 소리에 불편해진다.
9. 미술이나 음악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10. 양심적이다.
11. 깜짝깜짝 놀란다.
12.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야 할 때 당황한다.
13. 사람들이 불편해 할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지 안다.
14. 사람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짜증이 난다.
15. 실수를 저지르거나 뭔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6. 폭력적인 영화와 TV 장면을 애써 피한다.
17.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긴장을 한다.
18. 배가 아주 고프면 강한 내부 반응이 일어나면서 주의 집중이 안 되고 기분 또한 저하된다.
19. 생활의 변화에 의해 동요된다.
20. 섬세하고 미묘한 향기, 맛, 소리,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즐긴다.
21. 내 생활을 정돈해서 소란스럽거나 당황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22. 경쟁을 해야 한다거나 무슨 일을 할 때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불안하거나 소심해져서 평소보다 훨씬 못한다.
23. 어렸을 때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내가 민감하거나 숫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 ‘그렇다, 아니다’ 중 ‘그렇다’가 13개 이상이면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

최 작가는 “저는 23개 모두 해당한다”고 했다. HSP는 6명 중 1명꼴이라고 한다. 그는 “예민함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스펙트럼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누구나 예민함을 가지고 있지만 정도의 문제라고 보면 됩니다. 23개 항목으로 예민한 기질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보는 거죠. ‘그렇다’고 답한 항목이 6, 7개라면 예민한 기질보다는 그렇지 않은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민한 사람은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는 차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업무 등으로 꼭 만나야 하는 사람 외에는 인간 관계의 범위를 줄이고 불편함을 주는 장소에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지뢰처럼 피해야 하는 게 많다보니 만나는 사람도 적어지고 활동 반경도 좁아집니다. 이를 좋다 나쁘다라고 보기보다는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이라고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움츠려 있고 재미없게 산다고 고민하는 분도 있는데요, 그게 성격에 맞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활 방식을 고수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책이 호평을 받으며 강연과 북토크가 이어지고 있다. 극강의 예민함을 지닌 최 작가는 어떨까.

“다소 버겁지만 필요한 건 해야죠.(웃음) 익숙해지니까 처음보다 힘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횟수는 조절하려 합니다. 제 생활을 지켜야 하니까요.”

정 대표는 “심리학 책을 꾸준히 내는 한편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처럼 어른을 위한 그림책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서스테인·2024년)는….

모두를 편하게 해주려 애쓰고, 배려심이 넘친다.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지만 정작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게 싫어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 한다. 그리고 금방 기진맥진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예민한 사람, HSP(Highly Sensitive Person)다. HSP의 특성을 분석해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짚어주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예민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날카롭게 반응하고 호불호를 분명히 드러내며 예민하게 행동하는 사람과 다르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HSP는 △감각의 민감도가 매우 높은 ‘초감각’ △감정에 강하고 빠져들고 타인의 감정도 빠르게 흡수하는 ‘초감정’ △음악 그림 영화 책 등을 감상하거나 스스로 창작하며 영감을 느끼는 ‘심미안’을 지닌다.

나이도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을 더 많이 알게 돼 이를 피하려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 나이가 들수록 더 예민해 지는 게 정상이다.

예민한 사람은 갈등을 힘들어해 상대방에게 맞춰준다. 부정적인 자극을 크게 느끼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참는다. 운전대를 잡으면 쉽게 흥분하는 건 전후면 좌우방 등 차를 둘러싼 세부 상황에 온통 신경을 쓰게 돼 날카로워지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 환경과는 가급적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피할 수 없을 때는 과몰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참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기억하고, 좋아하는 일을 틈틈이 하며 에너지를 채우는 게 좋다. 자신이 어느 정도 예민함을 지녔는지 파악하고, 살면서 특히 힘든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게 한다. 자기에게 맞는 생활 방식과 마음가짐을 통해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HSP#심리학#최재훈#정지은#감정 관리#번아웃#독서모임#에너지 회복#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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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추천 많은 댓글

  • 2025-01-16 12:38:59

    나는 예민하지 않았는데 박통 탄핵을 보고 죄없는 사람도 감옥가서 반불구가 될 수도 있구나하고 그때 부터 예민해졌다 그리고 부정선거를 알고부터 이사회가 얼마나 썩었는지 더욱 예민해 졌다 그리고 비상계몽령을 보면서 이사회가 종중들에게 넘어가고 법도 무법천지고 그래서 더욱더 예민해졌다 언론의 썩은내 때문에 쉼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예민해졌다 이제 어떡하냐?

  • 2025-01-16 22:48:40

    배고프면 기분이 고양되고 주의가 깊어지는 체질도 있나? 점집에서 최근에 주위에 우환이 있었구나, 아니면 있을 조짐이로다...라는 식 대충 누구나 예스할 만한 질문을 만들어 아무나 감수성 예민 사춘기로 몰아가지 말지어다.

  • 2025-01-16 22:43:41

    설문 조항이 조금 우수꽝스럽다. 예민한 사람들도 폭력성을 간접충족하는 액션영화 많이들 즐겨본다. 예술 심취 감성하고 생활 감수성은 또 다른 것이다. 다른 조항들도 코거리 귀거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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