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소믈리에 50대 엄마와 20대 영상 감독 아들. 자연과 건강에 관심 많은 30대 식물 전문가(플랜티스트)와 요리사 부부, 그리고 40대 갤러리스트. ‘예술 작품은 어떤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을까’란 질문에서 출발해 소장자의 생활 공간을 상상해 전시를 구성한 독특한 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성동구 디뮤지엄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획한 ‘취향가옥: 아트 인 라이프, 라이프 인 아트’전이다.
이번 전시는 부부나 모자 같은 5명의 가상 인물을 먼저 창조했다. 그리고 이들의 취향과 정체성, 감각을 설정해 공간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첫 번째 공간은 상반된 두 개의 취향이 공존하는 ‘스플릿 하우스’다. 두 개의 입구로 분리된 집은 한쪽은 아들, 한쪽은 엄마의 공간이다. 20대 아들의 공간엔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일본과 한국 젊은 작가 작품들이 배치됐다. 반면 엄마의 자리엔 이승조, 박서보, 김환기 등 원로 작가 작품들이 걸렸다.
다음 전시장 ‘테라스 하우스’로 넘어가면 30대 부부의 공간이 펼쳐진다. 클로드 비알라, 이강소, 이은, 프랭크 스텔라 등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 배치됐다. 테라스엔 가구와 도예 작품을 제작하는 로마넬리 부부의 가구나 오브제가 눈길을 끈다. 특히 이 ‘집’ 입구엔 파블로 피카소의 석면 판화가 걸려 있다. 종이 작품인데다 색감이 알록달록해 관객들 반응이 좋다고 한다.
마지막 ‘듀플렉스 하우스’도 독특하다. ‘맥시멀리스트’ 취향의 40대 남성 갤러리스트를 주인으로 상상하고 꾸몄다. 복층 구조의 넓은 공간에 알렉산더 칼더의 종이 작품부터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 작품, 또 하비에르 카예하의 커다란 조각 작품 등 다양하게 배치했다. 장 푸르베, 핀 율 같은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도 배치됐다.
전시 관람이 누군가의 집을 방문해 취향을 엿보는 기분이 들도록 공간을 꾸민 건 무슨 연유일까. 대림문화재단 관계자는 “대림미술관 기획전에서 일부 공간에 가구를 배치해 집처럼 보이게 하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적이 있다”며 “이번 전시는 그런 아이디어를 최대로 끌어 올리는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각 공간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러 나이대를 설정한 것도 이유가 있다. 이 관계자는 “대림미술관하면 2030 세대가 찾는 곳으로 여겨졌는데, 팬데믹 시기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다른 연령대의 방문도 늘어났다”며 “이런 흐름에 맞춰 30~50대 관객의 취향에 맞춘 공간도 조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컨셉트가 인상적이지만, 그간 외부로 공개된 적이 거의 없던 대림문화재단 소장품이 다수 나온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70여 명의 국내외 예술가 작품 300여 점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재단 소장품이다. 전시된 면면을 보면 트렌디한 디자인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이 많다. 그런 가운데 ‘스플릿 하우스’에 김환기 작품 2점도 걸려 있어 “이 작품들이 여기에 있었느냐”고 신기해하는 관객 반응도 적지 않다. 5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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