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86〉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31일 10시 23분


이별한 후에는 뭘 할까 두부를 먹을까 숙희가 말했다

내 방에서 잤고 우리는 많이 사랑했다 신비로움에 대해 말해봐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숙희는 말했다

눈이 내렸을까 모르겠다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른다 두부 속에 눈이 멈춘 풍경이 있다고 두부 한 모에 예배당이 하나라고

사랑하면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야 집에 두부가 없는 아침에 우리는 이별했다

숙희도 두부를 먹었을까 나는 두부를 먹었다

몸 깊은 곳으로
소복소복 무너지는

이별은 다 두부 같은 이별이었다
(하략)

―여성민(1967∼ )


언젠가는 시에 등장하는 음식들만 가지고 책을 쓰고 싶다. 나이가 들어 혀가 무뎌지면 글로 음식을 맛보리라. 이런 생각으로 시를 모으는데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음식은 ‘국수’다.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그 유명한 백석 시인의 국수요, 몸과 마음이 헛헛할 때 찾는 것은 이상국 시인의 국수다.

국수만큼 많이 등장하는 시인의 음식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두부’다. 먹다가 목이 메는 것은 송찬호 시인의 두부이고, 강한 척 견디는 ‘두부 인간’은 이영광 시인의 것이다. 두부 음식이 다양하듯 두부의 시 또한 여럿이라는 것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시적인 두부의 하위 항목으로 오늘은 ‘이별의 두부’를 소개한다. 두부는 참 부드럽다. 단단해 보이지만 그것은 무너지기 쉽다. 시인은 소복소복 무너지는 두부가 꼭 헤어진 마음 같다고 말한다. 두부가 무너지면 그 안에 있는 세계도 무너진다. 두부 안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던 연인은 헤어지고 말리라. 드라마를 보면 교도소 앞에서 두부 먹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출소의 두부’에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우리의 두부는 이토록 다양한데.

#숙희#두부#이별#여성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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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2025-01-31 22:06:07

    좋네요 어지러운 세상인데.. 국힘 의원들만 두부 같은 존재라고 욕 했거든요 ( 무기력하고 암것도 안 하는 물컹한 ~ㅎ) 근데 이처럼 결이 다른 두부 존재가 시로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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