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성곽(城郭)의 나라다. 조선 초기 집현전 직제학(直提學) 양성지(1415∼1482)의 말이다. ‘세조실록’에 기록된 상소(上疏)에서 그는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아뢴다. 아닌 게 아니라 북한 지역을 제외하고도 현재까지 확인된 성이 2100개를 넘는다. 90%는 산성(山城)이라고 한다.
신라 백제 고구려가 패권을 다투던 삼국시대, 세 국경이 맞물리던 충북은 산성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다(‘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연규상 지음·샘터사·2014년). 여기저기 성들이 있는 괴산 보은 단양 제천 충주 등 중부 내륙에서 그 중심은 청주다. 청주에는 조선 중부를 지키던 진짜 산성이 있고, 외부인이 범접하지 못하던 요새 같은 곳이 있고, 지역 경제를 이끌던 벽 높은 구조물이 있다. 그 ‘성’들로 가 보자.
● ‘산하는 웅장하고 의기는 드높아라’
프란츠 카프카 소설 ‘성’을 번역한 독문학자 이재황에 따르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까지 유럽 ‘고딕 문학’ 전통에서 성의 이미지는 비밀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벌어지며, 섬뜩한 매력을 발산하는, 베일에 가린 공간이다. 드라큘라 성을 떠올려 보라.
반면 우리 성은 성곽, 즉 성벽이다. 전시(戰時)에는 피아가 생존을 두고 맞서는 경계이지만 평소에는 어머니 품같이 넉넉함을 품고 있다. 골짜기를 둘러싸는 포곡형(包谷形) 산성이 주류여서 지형에 따라 구불구불하니 더 자연스럽다. 서쪽으로 청주 도심을 굽어보는 상당(上黨)산성이 그렇다.
너른 잔디밭 구릉을 올라탄 상당산성은 높이 4∼5m, 둘레 4.2km, 넓이 약 72만7000㎡(약 22만 평)다. 등성이를 두른 석벽이 움푹한 분지를 안고 있는 모양새다. 삼국시대 토성(土城)으로 지어졌다는 것 말고 기원은 알 수 없다. 백제 축조 설, 김유신 장군 아버지가 세웠다는 설, 아니 김유신 아들이 지었다는 설 등이 떠돈다.
18세기 후반 상당산성 승병(僧兵) 영휴(靈休)의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跡記)’는 궁예가 쌓은 뒤 견훤이 빼앗고 끝내 왕건이 차지했다는 야사(野史)를 전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쳐 숙종 42년(1716년)부터 4년간 석성(石城)으로 개축했다. 성벽 위에 여장(女墻·낮게 쌓은 담)을 쌓은 뒤 옥개석(屋蓋石)을 올리고 총안(銃眼)을 배치했다. 가까운 곳을 겨냥한 근(近)총안 바닥은 지면을 향해 가파르고, 먼 곳을 쏘는 원(遠)총안 바닥은 평평하다.
산성의 주목적은 장기 항전이다. 상당산성도 청주읍성(邑城) 주민들이 전시에 농성(籠城)하는 피란성(避亂城)이어서 병영(兵營), 장대(將臺·지휘소), 군량 창고를 갖췄다. 승군(僧軍)을 위한, 각각 66칸 절 구룡사와 남악사가 있었다. 연못 다섯 곳, 우물 열다섯 곳도 있었는데 연못이 있는 산성은 국내에서 상당산성뿐이다. 조선시대 지도를 토대로 20세기 후반 여러 차례 수축(修築)하며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충북 청주시 상당산성 남문이자 정문인 공남문과 성곽 전경. 얕은 구릉 잔디밭을 앞에 두고 어머니처럼 다가오는 사람을 품으려는 듯 보인다.
잔디밭 위 남문이자 정문 공남문(控南門)은 3개 문 가운데 유일한 홍예문(虹霓門)이다. 이 문을 통해 성벽 길을 일주하며 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보름달 높게 뜬 밤, 서문 미호문(弭虎門)까지 서북쪽 등성이를 오르다 보면 청주 도심 야경의 진수가 보인다고 한다.
공남문 앞에 매월당 김시습 시비(詩碑)가 있다. ‘산성에서(遊山城)’라는 오언율시가 새겨져 있다. 한 구절은 이렇다. ‘멀리 바라보니 산하는 웅장하고/높이 오르니 의기는 드높아라’ 정말 그렇다.
청남대 입구에 서 있는 향나무.● 베일을 걷은 성, 청남대
성으로 통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성 앞 드넓은 호수는 해자(垓字)다. 돌벽으로 둘러싸이지는 않았지만 단연코 성이다. 남쪽의 청와대, 청남대다. 2003년 4월 대통령 별장 역할을 뒤로하고 개방된 청남대는 ‘비밀스러운’ 베일을 걷어낸 성인 셈이다.
대통령 7명이 약 20년간 88회, 총 471일의 휴가를 이곳에서 보냈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어쩌면 가장 사적인 삶을 간접 체험하는 공간이다. 대통령은 이 시간만은 성주(城主)였을 터다.
접근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보안이 으뜸이었다. 본관 앞 호수에는 제트보트가 항시 대기해 긴급 사태가 나면 대통령을 호위하고 대청호로 탈출할 준비를 했다. 청남대 본관 2층 대통령 사저 계단참 벽에는 ‘내림’ 버튼이 있다. 누르면 강철 차단문이 내려와 1층과 격리된다. 사저 창문은 33mm 탄까지 막을 수 있는 방탄유리로 도청 방지 장치가 돼 있다.
청남대 대통령기념관에 전시된 대통령들의 취미생활 용품들. 생각보다 소박하다.사저 및 청와대 본관 건물을 60%로 축소해 만든 대통령기념관을 둘러보면 국가원수의 일상이 의외로 검소했다고 느껴진다. 한때 황금 수도꼭지가 있다고 소문난 사저 화장실은 그저 당시 고급 호텔 수준이다. 대통령들이 즐겼던 스포츠, 낚시 같은 취미생활 용품도 소박하다. 도배한 지 41년이 넘은 사저 벽지는 조금씩 색이 바랬다. 본관 앞뜰 230년 된 모과나무는 여전하다. 사저 집무실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구상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해외 순방 연설문을 썼다. 대통령 가족 침실은 1인당 15만 원에 하룻밤 머물 수 있다.
대통령 간접 체험을 마쳤다면 184만4000㎡(약 55만2000평)에 이르는 밖으로 나선다. 조경수 100여 종, 5만2000여 그루와 야생화 130여 종, 약 20만 송이가 곳곳에 있다. 겨울이라 꽃이 아쉽지만 본관 입구 꽃사과나무는 지난해 11월까지 꽃을 피웠단다. 멧돼지 너구리 고라니가 출몰하는 자연 속을 거니는 기분이 좋다.
청주 청남대 봉황의 숲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대청호반. 뭍에서 뻗어 나온 언덕들이 섬 같다.청남대 3경(景)은 오각정, 초가정, 그늘집이다. 하지만 벌컨포 진지였던 ‘봉황의 숲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대청호 풍경은 쉽게 잊기 어렵다. 전망대 가는 길은 오각정으로 통하는 길에서 언덕 쪽으로 작게 나 있어 지나치기 쉽다. 그곳에서 호수는 다도해가 된다. 호반에서 물 쪽으로 삐죽삐죽 내민 언덕들이 섬처럼, 노르웨이 피오르처럼 겹쳐 보인다. 청남대는 ‘아주 멀리 낯선 곳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그 낯섦이 던지는 유혹은 매력적이다.
● 담배 한 개비와 마음 치유
연규상 작가에 따르면 1970, 80년대 청주 지역 경제는 ‘서대동연(西大東煙)’으로 압축된다. 서쪽 대농 공장과 동쪽 연초제조창이 청주를 먹여 살렸다는 것. 한때 노동자 3000여 명이 매년 100억 개비의 담배를 17개국에 수출할 만큼 번창하던 연초제조창은 2004년 뒤안길로 사라졌다.
연초제조창 건물 24개 동과 터는 한동안 용도를 찾지 못해 비둘기 소굴이 돼 버렸다. 2011년 국제공예비엔날레를 열었을 때 전시장으로 날아든 비둘기들이 오히려 신선하다는 평가를 얻었을 정도다. 담배 제조에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기에 청주 여성들의 손꼽히는 직장이기도 했다.
연초제조창이 탈바꿈한 문화제조창의 열린 도서관.연초제조창은 문화제조창으로 탈바꿈했다. 가로세로 각각 1m인 기둥과 층고 높은 천장 및 벽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를 개조했다. 청주에 연고를 둔 섬유 금속 도자 공예작가들의 ‘오픈 공방’이 4층에 자리한다. 열린 도서관과 비엔날레 주(主) 전시장이 3, 5층을 채운다. 담뱃잎 찌는 냄새를 풍기던 옛 굴뚝은 높이만 5m 줄어든 48m짜리 기둥으로 변모해 고딕 성탑을 연상시킨다. 애연가라면 담배를 만들 때 쓰던 물품과 도구, 담뱃갑 등이 전시된 공간에서 까닭 모를 애수에 젖을 수도 있겠다.
청주 초정치유마을의 미디어 오감 테라피.거대하지만 따뜻한 성들을 탐방하고 약간 피곤해졌다면 초정행궁 옆에 지난해 문을 연 초정치유마을에서 생기를 되찾는 것도 괜찮다. 냉천(冷泉)인 초정 광천수를 활용한 스파 치유 풀(pool)에서 마사지를 받고, 개인 광천욕을 즐긴다. 정적 흐르는 어두운 공간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영상을 마주하며 명상하고, 천연향 가득한 공간에서 오감(五感)이 따뜻해진다. 청주시민과 외지인 이용료가 다르지만 초정행궁에서 숙박한 사람은 청주인 자격을 받을 수 있다.
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2025-02-01 13:03:31
한번 상당산성 가봤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2025-02-01 11:10:55
4류 정치만 해결되면 대한민국은 멋지죠 가보고 싶어지는 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