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생제 사용량이 처음으로 감소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사용량이 가장 많다. 2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인체 항생제 사용량은 31.5DDD(Defined Daily Dose·의약품 규정 1일 사용량)로 2014년(31.7DDD)보다 다소 줄었다. 하루에 항생제를 처방받는 사람이 국민 1000명당 31.7명에서 31.5명으로 줄었다는 뜻이다. 2008년(26.9DDD) 이후 매년 증가하던 항생제 사용량이 감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2015년 항생제 사용량 통계를 보고한 OECD 국가 중 한국과 이탈리아의 항생제 사용량이 31.5DDD로 가장 많았다. 슬로바키아(26.8DDD) 룩셈부르크(26.3DDD) 이스라엘(24.9DDD) 등이 뒤를 이었다. 항생제 사용량이 가장 적은 스웨덴은 13.9DDD로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최근 박병주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2008∼2012년 6개국 공동 연구진과 각국의 영유아 항생제 처방률을 비교한 결과 그 기간에 국내 영유아 항생제 처방 건수는 1인당 3.4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스페인(1.55건), 이탈리아(1.5건), 미국(1.06건), 독일(1.04건)을 크게 웃돌고 항생제를 가장 적게 쓴 노르웨이(0.45건)의 7.6배에 달하는 수치다. 3∼5세의 항생제 처방 건수도 한국이 가장 많았다.
항생제를 계속 사용하면 세균 중 일부에서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이 생겨난다. 항생제 내성균으로 2050년에는 전 세계 인구 10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어릴 적부터 불필요한 항생제를 자주 복용해온 탓에 국내 항생제 내성률(항생제 투여 시 살아남는 세균의 백분율)은 다른 나라보다 높다. 정용필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북유럽에서는 지금도 폐렴 치료에 페니실린을 사용하지만 국내에서는 내성균이 많아 페니실린의 효과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 5개년 계획’을 내놓으며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환자들은 항생제를 먹어야 할지 말지를 두고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불안감이 크다. 두 살 난 딸을 키우는 주부 이모 씨(33)는 “주위에서 치료 잘한다고 소문난 소아과에 가니 항생제를 처방해줬다”며 “한참 고민하다 항생제는 먹이지 않았는데 주위에서는 마음대로 약을 빼서 먹이면 안 된다고 해 난감했다”고 말했다. 실제 주부와 예비 엄마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항생제 관련 글은 수천 건에 달한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단순 감기에는 항생제가 필요 없다고 강조한다. 감기는 대부분 바이러스가 원인인데 항생제는 세균 감염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생제는 반드시 의사가 처방한 경우에만 복용해야 한다. 의사에게 항생제 처방을 요구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의사가 수익을 위해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항생제 오남용이 더 심각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처방받은 항생제는 반드시 그 용법과 기간을 지켜서 복용해야 한다. 증상이 조금 나아졌다고 항생제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세균이 증식해 증상이 악화되거나 내성이 생길 우려가 있다. 과거 처방받았다가 남겨둔 항생제도 임의로 먹으면 안 된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사가 감기처럼 가벼운 증상에서 항생제를 남용하고 환자들도 이런 병원이 잘 고친다고 여겨 다시 찾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항생제 오남용 문제가 심각해졌다”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부는 무조건적인 항생제 처방이 환자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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