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英伊기자」 구로2공단 초입에 있는 의류업체 M물산. 최근 공장 건물 한동을 아예 상설할인 판매점으로 개조해 재고의류 40∼60%세일을 실시중이다. 이번 재고세일은 올들어 벌써 열번째다.
그러나 브랜드가 별로 이름없는 것이기 때문인지 고객의 발길은 뜸하다. 공단내 근로자들만이 간간이 찾아올 뿐이다.
한때 밤낮없이 기계소리로 요란했던 구로공단엔 요즘 난데없는 판촉전시장이 부쩍 늘었다.
공장을 돌리기 보다는 매장으로 빌려주거나 자기가 직접 세일을 하는 편이 훨씬 벌이가 좋기 때문이다. 불황타개를 위한 업종전환인 셈이다.
작년부터 공단내 입주업체들이 하나 둘 기존의 공장건물중 일부를 의류판매장이나 물류창고로 만들기 시작하더니 올들어선 여기저기 막 생겨나 공단이라기보다는 상가지역 같은 느낌을 준다.
현재 공단내 할인판매장은 10여곳. 자체 상품판매이외에도 아예 다른 업체의 할인판매장으로 임대해준 곳도 있다.
『구로공단이 공장돌아가는 곳이란 것은 옛말입니다. 경기침체로 매출이 격감하면서 공장들이 생산라인을 줄이고 일부 공장은 임대로 놓거나 아예 팔려고 내놓은 곳이 많습니다』 K산업 金모 관리부장의 말이다.
2∼3년전까지만 해도 평당 3백20만∼3백50만원 하던 공장부지가 요즘에는 2백50만∼2백70만원에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는다.
한국수출산업공단 金柄浩기업관리부장은 『임대차거래는 올들어 30여건에 이르는 반면 매매거래는 4,5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공단의 공장들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편이다. 경기 포천에서 자수제조업을 하고 있는 朴진영씨(38)는 올초 은행부채 20억원만 떠안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공장을 내놓았지만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다.
몇년전 호황기 「막차」를 타고 시작한 자수제조가 시작하자마자 사양길로 접어들어 매달 2천여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은행부채 20억원이외에도 시설자금10억원 운영자금12억원 등 22억원의 자금이 들어갔다.
朴씨는 『요즘 중랑구 성동구 도봉구일대의 소규모 의류업체는 3분의 1정도가 문을 닫고 식당이나 상점 등으로 전업하고 있다』며 『공장이 팔리면 다시는 제조업에 손대지 않고 장사나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합병매수(M&A)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한 M&A 중개회사의 경우 상장사 5개사를 매물로 받아뒀으나 4개월째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 상장사는 모두 섬유와 전자업체로 재고가 많고 현금흐름이 좋지 못한 기업들이다. 그나마 매매가 이뤄지는 것은 성장성이 높은 정보통신업체와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 뿐이다.
M&A중개사의 한 관계자는 『정보통신업체를 제외한 제조업체는 거의 팔리지 않고 있다』며 『경영권 프리미엄은 포기하고 부동산과 생산설비비만 받고 기업을 넘기겠다는 경영주가 많다』고 말했다.
제조업에 대한 애정이 식고 있다는 증거다. 부도기업을 돕는 팔기회에는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 방문자가 7,8명정도 였으나 요즘은 10여명으로 부쩍 늘었다.
『얼마전까지는 부도가 나도 어떻게든 기업을 살려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하루라도 빨리 손을 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고 팔기회 尹漢基사무국장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