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承虎·白宇鎭기자」 삼성전자는 지난 6월말 가로화면 폭이 약 1인치 넓은 새 컬러TV 「명품플러스원」을 출시, 재미를 보고 있다.
명품플러스원은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화상신호 가운데 재생하기 어려운 양끝을 잘라버리고 보여주는 기존 TV와 달리 이 부분을 살려보라』는 李健熙삼성그룹회장의 지시에 따라 태어난 제품이다. TV내수시장이 10% 줄어든 가운데 명품플러스원은 지난달말까지 29인치 제품의 경우 일반 29인치의 두배 이상인 약 12만대가 팔렸다.
이처럼 「일단 손을 대면 끝장을 보는」 집중력과 승부근성으로 그는 그룹내에서 강력한 경영카리스마를 형성하고 있다.
「회장으로부터 너무 멀어지면 얼어죽고 가까워지면 화상을 입는다」는 이른바 「적정거리론」도 이같은 카리스마에서 나왔다.
鄭泰守한보그룹총회장의 3남 鄭譜根한보그룹회장(34)이 두 형님을 제치고 부회장에 오름으로써 「후계자」로의 지위를 굳힌 것은 지난 90년. 당시 약관 28세로 카리스마를 형성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그는 지난 91년 수서사건으로 부친이 6개월간 구속돼 있을 때 그룹의 전권을 장악, 절체절명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돌파력을 보여줬다.
鄭총회장은 풀려난 후 『보근이는 지난 6개월간 10년치의 경영수업을 받았다』며 극찬, 카리스마형성을 적극 돕고 나섰다. 수서사건후 鄭회장의 그룹내 지위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들 일화는 기업총수의 경영카리스마 형성 과정의 한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정보와 인사권을 쥐고 공개석상에서 위엄을 부리는 것은 카리스마의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총수의 카리스마는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과 핵심을 파악하는 직관력, 그리고 일을 추진하는 돌파력에 의해 복합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주요그룹 총수들, 특히 鄭夢九 具本茂 李雄烈회장 등 지난 1∼2년새 취임한 총수들은 어떻게 경영카리스마를 쌓아가고 있을까.
鄭夢九현대그룹회장은 지난 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 경영을 맡으면서 전국 주요 도시의 변두리땅을 사들였다.
그가 대전에서 공동묘지를, 대구에서는 진흙땅을 매입해 AS사업장을 짓자 임원들은 「여기에서 뭘 하나」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10여년 뒤 鄭회장이 점찍은 곳에 상가나 교차로가 들어섰고 의아해했던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소탈한 성격의 具本茂LG그룹회장은 회의장에 미리 와 사장들을 기다릴 정도다.
하지만 具회장은 그룹의 장기 비전인 「도약 2005」를 제시하고 개인휴대통신(PCS)사업을 따내며 정체됐던 그룹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나름대로 카리스마를 확보하고 있다.
李雄烈코오롱그룹회장은 예고없이 계열사에 들러 경영현황을 보고 받거나 무교동 술자리에서 젊은 직원들과 어울리면서 자신과 그룹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총수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의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이 그쪽으로 항해하도록 하는 키잡이로 비유된다.
李健熙회장이 대내외적으로 확고한 카리스마를 구축하는 계기가 앞으로 자동차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는 것이라면 鄭夢九회장의 경우 관건은 일관제철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이라고 할 수 있다.
金宇中대우그룹회장은 전광석화 같은 두뇌회전과 판단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94년말 대우그룹이 미국 미시간 경영대학원에서 연 아프리카투자세미나장. 세미나가 1시간 남짓 진행되는 동안 金宇中대우그룹회장은 세미나는 듣지않고 줄곧 미시간MBA 자료만 들여다 봤다.
그러나 세미나를 마치고 이동하는 승용차 안에서 金회장은 미시간MBA뿐 아니라 세미나의 세부적인 사항도 줄줄이 꿰고 있음을 보여줬다. 승용차에 동승했던 미시간대 교수는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함께 처리하는 金회장의 능력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의 통찰력과 난국 돌파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는 조선소를 짓기 위한 차관도입,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건설, 서산간척지 물막이공사에 세계 최초로 유조선 공법 적용, 80년 국보위가 중공업과 자동차 가운데 한가지를 고르라고 강요했을 때 자동차를 택한 것 등 일일이 열거하기 숨찰 정도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