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 무서운 속도로 세계화로 나가는 중국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 이 양대 국가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은 국민 모두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국가경쟁력 강화에 힘을 합쳐 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金善弘(김선홍·64)기아그룹회장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회사사무실에서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김회장의 이같은 지적은 최근의 국내 경제난이 경기순환적인 일과성 불황국면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요인에 의한 현상으로 근본 처방이 절실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에 가서 보면 우리나라와 근거리에 있는 산동성과 강소성만 하더라도 선진외국의 투자를 적극 받아들여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인구가 각각 7천4백만, 7천만명으로 남북한 인구를 합친 정도입니다. 중국은 전체로 보면 엄청난 시장이지요. 우리나라는 기술력과 시장도 모자라고 남북문제도 미해결인 점 등 불리한 여건이 한둘이 아닙니다. 국민 정부 기업이 모두 「시대는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직시해야 합니다.
서울대기계공학과를 나와 기아에 몸담은지 금년말로 만39년. 「자동차박사」란 별명이 말해주듯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한국자동차산업발전에 40년 세월을 하루같이 보냈다.
김회장은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게 됐으나 이대로는 선진국이 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다. 한가지 예를 들면 구미(歐美)선진국의 경우 「대화의 문화」로 컨센서스를 잘 이뤄가는데 우리도 이런 기법을 구사해야지, 그렇지 않고선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는 것이다.
―모두들 불황이라고 하지만 자동차산업은 그래도 수출이 괜찮은 편이어서 불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실이 문제지요. 그리고 재고가 쌓이면 무엇보다 큰일이지요. 그렇지 않도록 각사가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회사는 인원감축은 하지 않는대신 경비절감은 물론 생산 판매부문에 인력을 전진배치해 최대생산 최대판매를 목표로 뛰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경제에 있어 무엇이 문제인가요.
『기업을 하려면 돈 사람 물자가 필요하고 요즘엔 여기에다 정보와 타이밍도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타이밍은 사업과 투자의 최적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무엇보다 돈값, 즉 이자가 너무 비싸요.이렇게 높은 금리수준으로는 선진국 등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인프라(사회간접자본)를 잘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유통구조상의 비용 문제도 크구요. 자동차의 경우는 판매구조의 선진화가 안돼 있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옛날 배급시대때의 시스템 그대로 입니다. 그리고 품질과 성능 기술로 승부를 가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경제난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 국가경쟁력의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제품이 해외에서 싸구려 인식을 면치 못하면 채산성을 어떻게 맞추겠습니까. PC업계에서 혼다자동차를 배우자고 하고 도요타자동차가 혼다를 벤치 마킹하려고 합니다. 거대 기업 도요타에 비하면 작은 회사인 혼다에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것입니까. 바로 혼다의 뛰어난 품질입니다. 그리고 기업은 종업원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생산성을 높여나가야 합니다. 아주 저렴한 인건비의 중국제품이 세계로 쏟아져 나오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겨냅니까. 기술과 품질이 중요한 시점에 왔습니다. 경영자는 품질경영에 앞장서야 합니다』
기아는 경북칠곡출신의 金喆浩(김철호)씨가 지난 1944년 창업한 두발자전거제조회사인 경성정공으로 출발, 세발 자동차인 삼륜차를 거쳐 네발 자동차 사륜차를 만드는 회사로 키워온 독특한 성장과정을 갖고 있는 자동차전문기업이다.창업자가 73년 작고한 뒤 기아는 2차 세계석유파동의 여파로 80년 누적적자가 5백억원을 넘는 경영위기를 맞는다. 여기에다 정부의 자동차공업합리화조치로 명맥마저 끊길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81년 기아자동차(당시 기아산업)사장에 취임한 김선홍씨는 미니버스 봉고를 국내최초로 개발, 이것이 히트함으로써 죽어가던 회사를 기사회생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세간에선 그를 「봉고신화」를 낳은 인물로 묘사하기에 이른다. 전 종업원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하고 노조도 구사운동에 앞장서 회사를 살려냈음은 물론이다.
『기아는 작년까지 대규모 설비투자를 다 끝냈습니다. 막대한 자금소요로 경영이 압박을 받는 요인은 덜게 됐습니다. 그리고 전차종을 생산하는 풀라인업 생산체제를 갖추었구요. 이러저러한 요인으로 올해 실적은 작년보다 좋아질 것으로 추정합니다』
기아는 주인이 따로 없는 전문경영인회사로서 종업원 모두가 주인이라고 표방되고 있을뿐이다. 그러나 오너가 따로 없는 탓인지 외부로부터 타재벌 기업에의 합병설 등 기업내부의 단결력을 약화시키는 각종 루머에 시달려왔다.
―최근에도 모재벌그룹과의 자본제휴설이 업계 일각에서 나돌았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이 전혀 아닐뿐더러 그런 루머가 나올만한 아무런 꼬투리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기업들도 앞으로는 기아처럼 업종이 전문화되고 전문기업인이 경영하는 형태로 따라올 것으로 봅니다』
김회장은 금탑산업훈장(89년)과 인촌상(산업기술부문·91년)을 수상하는 등 기업경영과 자동차산업기술개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많은 상을 받았다.
지난 90년 기아자동차사장에서 아시아자동차 등 16개 계열사를 총괄하는 그룹회장자리에 오른 그는 기아를 연간매출액기준 국내 8위 그룹으로 끌어올렸다. 수년전부터는 해외비즈니스에 직접 발벗고 나서 올해들어서만 인도네시아의 국민차사업을 따내고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터키, 중국프로젝트 등 5개의 해외신규자동차사업을 성사시켰다.
―일본 미국 등의 자동차업체들이 인도네시아정부에 조세상의 특혜조치를 베푸는 국민차사업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서 그들간에 통상마찰이 야기되고 있는데 기아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가요.
『전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정부는 「선진국들이 뭐라해도 우리는 한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늦게 자동차사업에 손을 댔으니까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자세로 밀어붙이고 있어요. 기존정책과 계획은 확고하게 추진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의 노동관계법개정안 내용이 재계와 노동계 모두에 반발을 사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어느 중소기업인이 없던 걸로 하거나 내년으로 미루면 어떻겠느냐고 나의 생각을 물어온적이 있어요. 없던 걸로 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내가 왈가왈부할 영역이 아니고 내년으로 미루자는데 대해선 올해 여의치 못한 일이 내년이라고 달라질게 있느냐고 했습니다. 정부가 한번 정했으면 밀고 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담=최희조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