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채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가 외국에 지고 있는 빚, 즉 총외채가 지난 11월 이미 1천억달러(약83조원)를 넘어섰다.
국민 1인당 부담으로 환산하면 1백79만원, 4인 가족기준으론 가구당 7백16만원에 이르는 규모다.
이를 놓고 정부와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위험수위를 넘었다」「아직은 견딜만한 수준」으로 진단이 엇갈리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외채의 급격한 증가속도에 크게 우려하는 상황이다.
특히 내년에도 경상수지적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 조짐이 보이지 않고 1년미만의 단기외채가 절반을 훨씬 넘는 「불량한 외채구조」가 더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상수지적자 확대와 맞물려 외채가 계속 불어나면 연간 50억달러에 달하는 원리금상환을 위해 다시 단기외채를 들여와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원화절하 대외신용도하락에 따른 차입조건악화 등으로 기업들의 비용부담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4년만에 2.4배 불었다〓외채위기론이 돌던 지난 85년 4백68억달러까지 올라갔던 총외채는 국제수지 흑자기조속에 90년엔 3백17억달러로 떨어졌으나 다시 증가추세.
현정부 출범직전인 92년말 4백28억달러로 시작했다가 작년말 7백84억달러를 거쳐 올들어서는 3월에 8백62억달러, 6월에는 9백26억달러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 11월중 1천억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정부 출범후 2.4배이상으로 불어난 것.
총외채가 국민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7.4%에서 올해는 20%를 넘어설 전망.
외채 이자지급액만 지난해 38억달러에 달했고 올해에는 50억달러정도로예상된다. 총외채가운데 상환기간 1년미만의 단기외채가 지난 8월말 기준으로 58.5%(5백70억달러)에 이른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외국환은행과 민간기업의 외화자산 등 대외자산규모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총외채에서 대외자산을 뺀 순외채 역시 지난해 1백71억달러에서 올 6월까지 2백43억달러로 증가일로다.
▼왜 느는가〓외국에서 빌려오는 돈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차관으로 국내에 들여오기도 하고 민간기업들이 해외에 나가 현지금융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대외거래에서 그만큼 손실이 커졌다는 것이므로 이 손실분만큼 해외차입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에 외채는 더 불어난다. 당초 60억달러로 전망했던 올 경상수지적자가 2백20억달러선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 외채급증의 주요인이다. 내년에도 최소한 1백50억달러 이상의 경상적자가 예상되는 만큼 외채급증 추세는 계속될 전망.
▼과연 견딜 만한 수준인가〓재경원은 경제규모가 커지면 외채도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1천억달러라는 수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선(GNP의 30∼35%)을 아직 밑돌고 있고 세계은행은 내년부터 한국을 세계외채백서 대상에서 제외키로 최근 우리정부에 통보해 왔다. 세계외채백서는 1인당 GNP가 9천7백달러를 넘는 나라는 자동으로 제외한다.
柳潤河(유윤하)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총외채 가운데 상당액은 민간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직접 조달하는 돈』이라며 『소비위주의 가계와 달리 국민경제에서는 미래의 예상소득이 크다면 얼마든지 빌려올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다른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지금 상황을 「오랫동안 낫지 않은 감기환자」로 비유하고 『지금 본격치료에 나서지 않으면 중증 또는 합병증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金會平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