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들의 96년]부도… 도산… 자살…시련 『혹독』

  • 입력 1996년 12월 29일 20시 56분


「李鎔宰기자」 「하루평균 37개 중소기업의 부도.언론에 보도된 중소기업사장의 자살만도 올들어 18건」. 중소기업의 부도가 늘고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이야기가 올해도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니었다. 정부와 대기업들이 연초부터 심심치 않게 내놓은 중소기업지원책들도 늘 그랬던 것처럼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기술개발 전문화 자기상표개발 따위가 약방의 감초격으로 제시됐지만 중소기업인들에게는 이미 「공자님 말씀」이다. 더욱이 올해는 전반적인 경기의 침체로 중소기업들이 느낀 자금 판매 인력난 등 「3난(難)」의 고통은 더욱 혹독했다. 「자금난」 올들어 중소기업 경영애로요인을 조사하는 어떤 조사에서건 자금난은 최대의 어려움으로 꼽혔다. 중소기업의 자금부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설비투자를 위한 돈을 구하던 중소기업들이 올 하반기 들어서는 운전자금을 구하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뭔가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데 돈이 모자란다는게 아니라 당장 공장을 꾸려나가기도 어렵게 됐다는 의미. 세모를 맞아 보너스는 고사하고 월급을 지급할 현찰마저 구하기 어렵다고 중소기업사장들은 호소한다. 그나마도 부동산 등 담보가 없는 중소기업에 은행문턱은 한없이 높기만 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최근 창업한 어느 사장은 『대기업에서 어음은 돈이지만 중소기업에서 어음은 종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하고 받는 외상매출어음의 평균 결제기간은 석달이 넘었다. 연초에 전액 현금결제를 약속했던 삼성도 지난 10월경부터는 현금결제를 거의 중단한 상태다. 한국은행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월말까지 지난해보다 10%이상 늘어난 9천2백84개의 중소기업이 문을 닫아 올들어 더욱 극심해진 자금난을 반영했다. 「판매난」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납품물량 자체를 줄여버리는 데는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기협중앙회가 조사한 「부도사례 원인분석」에 나타난 어느 대기업 하청 중소기업의 피눈물나는 사연의 한 대목이다. 기협중앙회 관계자는 『납품단가가 다소 인하되더라도 생산물량만 대기업에서 충분히 소화해준다면 치명적인 어려움은 없다』며 『최근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납품물량 감소로 재고가 크게 늘면서 회전자금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구두값의 거품을 빼겠다며 의욕적으로 출범한 중소기업 공동브랜드 구두 「귀족」의 부도는 대기업의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을 거부하고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교훈을 남긴 사건이었다. 중소기업들은 뭉치더라도 디자인개발과 과학적 마케팅전략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는 점을 깨달았고 이를 위한 정부와 관련단체들의 미흡한 지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인력난」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1백만원 받을때 똑같은 시간을 일한 대기업 근로자들은 1백40만원이 넘는 임금을 받는다. 근로자들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임금이 다소 적더라도 유흥업소 등 서비스업체에 가지, 힘들고 어려운 중소업체에 오려들지 않았다. 대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주는 중견업체들도 연구인력이나 대졸사원보다도 생산직 인력구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호소한다. 게다가 현재 논란중인 외국인근로자고용법안 역시 중소업체들을 우울하게 한다.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싼 임금으로 3D업종에 종사할 외국인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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