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性哲기자」 서울에 있는 외국항공사에서 화물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모씨(31)는 새해들어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한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점심걱정은 하지 않았다.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거래처 직원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점심시간에 불경기로 고통을 받고 있는 거래처를 찾기가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거래처 직원을 만나지 않기 시작하면서 월30만원이면 충분하던 한달 용돈이 40만원을 갖고도 모자랐다. 이씨는 마침 사무실 여직원을 중심으로 도시락을 싸오는 직원이 늘어나자 슬그머니 「도시락족」에 합류했다.
최근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이씨처럼 점심값에 부담을 느끼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회사측이 경비절감을 위해 가장 먼저 회식비나 접대비를 줄이고 있는데다 기름값인상 등 고물가로 주머니가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회사원들은 점심값을 줄이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방법은 구내식당 이용. 예전에는 군대를 연상케 한다며 기피하던 사람들도 이젠 스스럼없이 식판을 들고 구내식당 배식구 앞에 줄을 선다.
회사원 남궁모씨(29)는 『작년초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번밖에 이용하지 않던 구내식당을 최근 3개월동안 거의 매일 찾고 있다』며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걸려오는 전화도 없고 먼저 전화하기도 꺼려진다』고 털어놨다.
맛있는 집을 찾아 다니느라 점심시간이 모자라던 식도락형 직장인들도 이젠 값이 싼 식당을 고르느라 시간을 보낸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점심도 나가서 못먹느냐」는 소신파들이지만 예전과 달리 매일같이 내돈 내고 사먹는 점심값 1천∼2천원차이는 결코 만만치 않다. 식사뒤 한잔에 1천5백원하는 커피 전문점을 찾는 일도 뜸해졌다.
식당을 나설 때마다 신발끈을 고쳐 매는 버릇을 가지고 있던 직장인들도 요즘은 고민을 덜었다. 상사가 지불하거나 대충 눈치로 차례를 정해 돌아가면서 내던 점심값을 이제는 자기가 먹은 만큼 나눠 내는 일명 「더치 페이」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