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賢眞기자」 『이제야 멀티미디어사업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멀티미디어라고 모두 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삼성전자 멀티미디어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어느 부장의 하소연이다. 그의 말대로 최근들어 국내 전자업체들이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던 첨단멀티제품을 잇달아 포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93년부터 추진해왔던 32비트 멀티미디어게임기 사업을 지난 연말 공식적으로 접었다. 세계적인 게임기 전문업체인 세가사와 제휴해 내놓은 32비트게임기 「새턴」이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것.
게임기사업은 李健熙(이건희)그룹회장이 큰 관심을 가질 정도로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던 사업. 그러나 수요예측을 잘못해 사업철수라는 쓴 맛을 보고 말았다.
삼성전자측은 『32비트 비디오게임기가 호응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소비자들은 16비트 구형 게임기로도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 여파로 미국 애플사가 개발한 인터넷접속용 멀티기기인 「피핀」의 도입도 지난해 12월 전면 백지화 했다.
멀티미디어분야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단연 LG전자. 지난 93년 「하이미디어」라는 슬로건 아래 3DO게임기사업과 CD―i(인터랙티브CD)사업을 시작했으나 나타난 결과는 3DO사업포기와 CD―i사업의 부진.
LG는 3DO사업에 있어서 미 3DO사의 지분 3%에 참가해 일본의 마쓰시타와 함께 가장 먼저 진출했으나 지난 4년간 5만대도 판매하지 못하고 지난 연말 약 3백억원의 적자만 남긴채 사업을 정리하고 말았다.
CD―i도 지난 3년간 6만3천대가 판매되었으나 절반 이상이 유치원 등에 조건부임대 형태로 공급된 것이어서 실질적인 판매는 미미한 실정.
현대전자도 「비디오CD」의 아픔을 겪고 있다. 지난 93년 착수해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펼쳤던 비디오CD는 점차 전자업계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 3년간 국내에서 2만대도 판매하지 못해 50억원의 신규투자비용마저 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이에 따라 현대전자는 이달 중순에 있을 사업조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비디오CD 사업에 메스를 가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와 현대의 멀티미디어사업 부진은 PC를 기반으로 한 업계표준을 따르지 않고 조급하게 멀티사업을 추진한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이 잇따른 멀티사업의 정리에 대해 멀티미디어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 韓相基(한상기)부장은 『94년 멀티미디어붐이일때 멀티미디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순히 외국기술을 도입, 첨단에 투자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섰다』며 『결국 시행착오를 겪은 뒤 정리할 것은 정리할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멀티미디어업계의 새 화두(話頭)는 인터넷TV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와 개인휴대단말기(PDA). 그러나 업계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불투명한 멀티미디어업계에 이전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