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承虎 기자」 정부와 금융권이 한보철강의 제삼자 인수를 미리 염두에 둬야할 만큼 한보그룹의 자금사정이 악화된 것은 한마디로 자금능력에 비해 사업을 지나치게 키워왔기 때문이다.
80년대초 건설업에 진출, 겨우 그룹의 면모를 갖춘 한보는 지난 89년부터 세계 5위규모의 제철소를 짓기 시작했고 95년에는 유원그룹을 인수했으며 작년에는 러시아 이르쿠츠크 가스전사업에까지 진출하면서 계열사수 24개의 재벌그룹으로 몸을 불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보철강의 부채는 작년 6월말 현재 총투자액에 육박하는 4조2천4백60억원에 이르렀다. 이같은 부채규모는 95년말의 2조6천6백억원보다 반년만에 60%나 늘어난 것. 자본금 3천1백47억원의 13.5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보가 은행돈을 「쌈짓돈」처럼 사용하자 「고위층 실력자가 한보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설(說)이 떠돌기도 했다. 작년 전직 대통령 비자금사건땐 자금난에 허덕이던 한보가 이 돈을 쓴 사실이 드러났다.
한보철강의 자금난이 악화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당진제철소의 투자비가 당초 예상의 2배를 넘는 수준으로 불어났기 때문. 89년 계획당시 2조7천억원이었던 투자소요가 공사진척과 함께 5조7천억원으로 급증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보 관계자는 『공사기간중 수서사건 비자금사건 등에 연루되면서 공사가 지연됐고 기술적인 진전으로 공장의 설비기종이 바뀌었으며 인프라 투자소요가 추가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보는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작년 제일 산업 외환 조흥은행등으로부터 4천억원의 긴급구제금융을 받았고 이어 지난 12일에도 1천2백억원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그렇지만 현재 매일매일 돌아오는 어음결제를 간신히 막을 만큼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은 거의 매일 은행장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한보는 서울 서소문의 한보건설빌딩(옛 유원빌딩), 서울 장지동 개포동 등 수도권의 부동산 10여건을 매각, 4천억원을 조성하고 은행으로부터 3천억원을 추가로 빌릴 계획이지만 어느 것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