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光巖 기자] 몇년전까지만 해도 국내은행중 이미지가 가장 건실한 은행에 들었던 제일은행이 대형 부도가 잇따르면서 부실은행으로 전락했다.
25일 금융계에 따르면 제일은행은 지난 94년말까지 시중은행중 단연 돋보이는 영업실적을 보였으나 95년1월 유원건설부도와 96년1월 우성건설과 작년말 ㈜동신의 부도로 부실채권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커졌다.
제일은행은 유원건설 부도가 난 95년 15개 시중은행중 업무이익 4위, 당기순이익은 9위로 내려앉았다.
또 지난해에는 업무이익은 국민 조흥은행에 이어 3위를 했지만 당기순이익은 62억원으로 14위를 기록했다. 우성건설에서 받지 못한 이자 4백50억원과 대손충당금적립액 3백50억원 등 8백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떠안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제일은행이 3년연속 대형 거래업체의 부도로 시달리는 것에 대해 「1월 징크스」라며 불운(不運)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당초 한보철강의 주거래은행은 제일은행이 아닌 서울은행이었으나 지난 95년5월 지급보증이 많다는 이유로 「타의」에 의해 주거래은행으로 지정됐다는 것이다.
또 한보에 대한 지급보증이 늘어난 배경에는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의 한 아들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각별하게 지냈던 직원이 지점장 발령을 받은 것도 주요 원인이 됐다는 게 제일은행 관계자의 설명.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호사가들 입에서나 회자되는 말이고 6공때 수서사건에 휘말린 한보가 93년이후 화려하게 복귀한 것은 PK 정치실세들과 가까운 마산상고 출신의 李喆洙(이철수)씨가 제일은행 행장에 임명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행장하에서 제일은행은 산업은행과 함께 조흥과 서울은행이 꺼리던 한보에 대해 거액대출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자본비율이 극히 낮고 사업전망도 불투명한 한보철강에 총대출의 7%에 달하는 1조1천억원을 쏟아넣었다. 특히 제일은행은 부도처리된 유원건설을 한보에 단돈 1원에 넘겨줌으로써 한보의 부동산담보능력을 높여줬고 한보는 이 담보능력을 십분 활용, 천문학적 자금을 끌어다 썼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은행이 자체판단으로 대출을 했다면 이처럼 무리하게 여신운용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제일은행이 거래업체의 잇단 대형부도로 휘청거리는 것은 외압의 결과로 은행만 탓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