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6월23일 충남 당진 한보철강 당진제철소에서 열린 1단계 준공식.
이날 행사에는 한보철강과 별 관련이 없으면서도 민주계와 가까운 인사들이 적잖게 눈에 띄었고 李喆洙(이철수)당시 제일은행장과 우찬목조흥은행장 등 금융계 인사들도 이례적으로 많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대기업의 주요인사들은 물론 전직은행장과 시중은행 임원들이 이열 또는 삼렬로 배정받은데 비해 한보에 대출이 많은 일부 은행의 이사나 지점장은 일렬에 앉는 등 특별대접을 받았다.
당시 금융계에서는 이 행사를 계기로 한보그룹에 대한 금융특혜 의혹이 급속히 확산됐다.
이 당시에도 그랬지만 한보철강 부도이후에도 여러 은행중 자금지원을 가장 많이 한 제일은행과 산업은행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한보철강의 사업착수에서부터 석연찮은 거액대출 등에 이르기까지 이들 두 은행이 거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보에 대한 금융지원에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다면 이는 결국 제일 산업 두 은행이 금융권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금융가에서는 유력하다.
제일은행은 지금까지 한보그룹의 총차입금 22.6%에 해당하는 1조1천억원을 대출(지급보증 포함)했다.
특히 한보그룹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이전행장은 재임중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게 이 은행 내외의 시각.
이전행장은 재임시 8천억원을 한보에 빌려줬으며 당진제철소 1단계준공식이 열리기 일주일전 유원건설 주식을 한보그룹에 주당 1원씩 3백12만원에 넘겨 인수시켰다.
이전행장의 동생은 한보의 무역담당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한보에 대한 제일은행의 지원이 이전행장의 자의에 따라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제일은행의 한보 지원에는 대출규모나 과정으로 보아 외압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더 많다.
먼저 朴基鎭(박기진)전 제일은행장이 물러난 이유가 외형상으로는 동생에 대한 편법대출 책임 때문이었지만 박전행장이 외압에 버티는 스타일이어서 껄끄러운 존재였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는 것이 제일은행 사람들의 얘기다.
이전행장이 비리사건으로 물러나기 전에는 한보에 대한 대출을 꺼렸다는 점도 외압설을 증폭시키고 있다.
산업은행의 자금지원 과정에도 의혹이 적지 않게 제기된다.
산업은행으로부터 시설자금을 얻어쓰는 것은 금액이 얼마가 됐든 특혜라고 볼 수 있다. 산업은행 자금은 금리가 일반은행보다 훨씬 낮은데다 상환기간도 일반은행보다 대체로 2배이상 길기 때문이다.
李炯九(이형구)전총재 재직중이던 지난 93년에는 산업은행이 당시 鄭周永(정주영)명예회장의 대선출마문제로 권력핵심부와 껄끄러운 현대그룹을 시설자금 배정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심각한 금융제재라고 얘기됐을 정도.
그런데 무려 8천8백98억원의 산업은행 자금이 한보에 지원된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시설자금 대출이 의외로 빨리 결정된 것도 특혜의혹을 짙게 만든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전총재 퇴임 후 한보그룹의 추가지원 요청이 있었지만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산업은행은 최근에도 한보그룹에 3천억원을 추가지원하는데 한사코 거부했는데 이 또한 과거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白承勳·千光巖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