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이대론 안된다]『과소비 망국』외제면 만사OK

  • 입력 1997년 3월 18일 19시 45분


[임규진·허문명·이용재기자] 미니믹서기를 만드는 중소기업 한미하이텍의 金炳喆(김병철)사장은 요즘 사업할 맛이 난다. 자사제품이 현대백화점의 중소기업제품 상설매장에 진열되면서부터 잘 팔리고 있기 때문. 같은 물건을 용산 등 일반상가에 더 싸게 내놨지만 잘 팔리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견의류업체 R패션은 똑같은 신사복을 이탈리아 D사의 상표와 M이라는 자체브랜드로 각각 팔고 있다. D사 상표를 붙인 신사복은 만드는대로 매진되지만 M브랜드는 재고가 넘쳐 「땡처리(떨이처분)」하는 경우가 많다. M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연간 30억원의 광고비를 쓰지만 소비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골프채를 만드는 윤모사장(43)은 작년말 쇠고랑을 찼다. 지난 91년 창업, 골프채 국산화에 매달린 끝에 독자브랜드제품을 내놓았지만 소비자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윤사장은 파산만은 모면하려고 자사 제품에 외제상표를 붙여 팔다가 구속되고 말았다. 일본산 골프채 수입 1위국이 한국이고 미국산 골프채 수입 2위국이 한국이다. 질이나 가격보다는 우선 브랜드다. 그것도 외제 브랜드의 위력이 실감난다. 서울 강남의 A백화점 수입도자기코너에선 고객과 판매원 사이에 종종 싸움이 벌어진다. 최근엔 주부 김모씨(35)가 한달전 신용카드로 구입한 영국산 식기세트 「로열앨버트」를 물러달라고 졸랐다. 김씨는 도자기코너에 들렀다가 브랜드만 보고 충동적으로 1백20만원짜리 식기세트를 구입했으나 뒤늦게 카드대금 청구서를 받아본 남편이 『당장 환불하라』고 고함을 질러 할 수 없이 통사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서울 강남 B백화점 수입의류코너 판매원들은 단골고객인 정모씨(45)만 나타나면 신이 난다. 정씨는 항상 친구 4∼5명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 정씨는 외제상표 중독증환자다. 친구들도 예외없이 모방구매를 한다. 정씨가 1백만원대의 영국제 버버리코트를 고르면 친구들도 덩달아 산다. ▼“돈 물쓰듯” 적자인생▼ 모종합금융회사 직원 최모씨(30)는 신용카드만 38장을 갖고 있다. 연봉 3천만원을 받고 있지만 작년에도 저축 한푼 못했다. 티뷰론승용차를 뽑는다고 은행에서 1천만원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적자인생이다. 박모씨(40·서울 청담동)가 가진 청바지는 2만원짜리다. S중 3년생인 아들은 반드시 10만원대의 리바이스 청바지만 입는다. 과소비풍조는 회사원 청소년 등에게도 이처럼 확산돼있다. 과소비열풍은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홍콩의 늦여름, 크리스마스, 설날 등 3대 바겐세일 기간엔 홍콩행 비행기표를 구하기 힘들다. 한국 고객들은 홍콩 상인들에게 연간 7백억원 이상을 쇼핑비용으로 지불한다. 『일부 계층의 사치향락성 해외여행과 해외여행경비의 과다지출에 대한 자성이 있어야 합니다. 해외여행경비 소지한도를 인하하고 여행비의 계획적 사용을 유도해야 합니다』(徐聖喆·서성철 공동체의식개혁국민운동협의회 사무차장) 지난해 경상수지 적자는 2백37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4.7%에 달했고 소비재 수입액은 1백61억6천만달러로 전년대비 20.6%가 늘었다. 모피코트 구두 향수 컬러TV 바다가재 등의 수입액은 전년보다 배이상 늘었다. 승용차 주류도 50%이상 증가했다. ▼서비스업 크게 늘어▼ 과소비는 또 서비스업을 비정상적으로 살찌운다. 지난 90∼95년 사이 제조업 취업자수는 연평균 0.6% 늘어난 반면 서비스업은 5.7% 증가했다. 이 기간중 서비스업 취업자 비중은 66.4%에서 75%로 커졌다. 특히 음식 숙박업 등 비생산적 서비스분야의 취업자 증가속도가 금융 운수 전기가스업 등 생산적 서비스업의 2배를 넘었다. 누구나 과소비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위화감이 커지고 더 많은 땀을 흘려도 더 적게 버는 사람들의 일할 맛도 죽이는 결과가 빚어진다. 『황금만능 풍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교육도 훌륭한 시민을 키우기보다는 출세위주로 흐르고 있지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마음대로 쓰자는 의식이 팽배해 있어요』(朴昇·박승 중앙대교수) 소득은 1만달러 수준이지만 소비행태는 3만달러 수준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과소비는 비합리적일 뿐아니라 비도덕적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기 때문이죠. 다만 법으로 처벌할 수 없을 뿐입니다. 「내돈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땀흘려 정당하게 벌어 세금을 다 내고도 과소비를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孫鳳鎬·손봉호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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