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세계]「아껴쓰세요」캠페인 『열받네』

  • 입력 1997년 3월 24일 08시 27분


[이영이·임규진 박현진·이용재 기자] 서울 남대문로 삼성그룹 본관. 사원 H씨(29)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팍팍」 받는다. 볼 일을 보기전 습관적으로 변기의 물을 내리는 그는 요즘 변기옆의 「양변기 1회 사용시 22원입니다」라는 문구 때문에 물도 함부로 못 내린다. 세면대에 서면 수도꼭지위에 「1분간 물을 트는데 12원입니다」, 손의 물기를 닦으려 하면 「티슈 한장에 7원. 한장으로도 충분합니다」라는 문구가 「물귀신」처럼 따라다니며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쫀쫀하게 아껴야 하나」하며 화도 치밀었지만 화장실에서 쓰는 물값이 연간 1억원이나 되고 절약캠페인으로 1천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얘기에 말문이 막혔다. 화장실 뿐만이 아니다. 복사기 앞에 서면 「잠깐만, 이면지로 사용해도 괜찮은 문서는 아닙니까. A4용지 한장에 5.92원이면 얼만데. 아껴야 잘 살죠」라는 문구가 그를 꼼짝 못하게 한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실제 절감되는 비용도 크지만 사원들이 불황을 체감하고 경비절감과 경쟁력강화에 적극 동참하도록 하는 심리적인 효과가 더욱 크다』고 말한다. 서울 남산의 제일제당 사옥에서는 야근자들이 별도로 연등신청을 하지 않으면 암흑속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 또 저녁무렵 찾아오는 방문객들은 갑자기 캄캄해지는 바람에 당황해하기 일쑤다. 개별 연등신청을 하지 않는한 중앙통제실에서 점심시간은 물론 퇴근시간(오후6시)이후 사옥전체의 전등을 모두 꺼버리기 때문. 한국중공업 지방공장에서는 매일 4명씩 감찰조를 짜서 부재시 전등을 켜놓은 곳은 없는지, 수도꼭지에서 물은 새지 않는지 이곳저곳을 살피며 돌아다닌다. 또 아침출근직후와 점심시간후 매일 두번씩 절약캠페인 방송을 실시, 사원들의 귀에 못이 박혀 있을 정도. 제일보젤은 전사원이 매달초 한달간 필요한 사무용품을 신청한다. 볼펜이나 디스켓 등 개인사무용품은 개인별로, 복사용지 등 공동사용품목은 부서단위로 신청해 주어진 범위내에서 한달살림을 꾸려야 한다. 그동안 회사 물건을 남의 물건 쓰듯 했던 직장인들. 이제 경비절감을 위해 몸부림치는 기업으로부터 더욱 적극적인 「고통분담」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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