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이영이·박현진기자] 『불황이오? 경제가 어렵다지만 벤처기업은 다릅니다. 동업계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로 일손을 빌려주기도 했지만 요즘엔 자기 사업하기도 벅차지요』
서울 강남구 포이동 「포이밸리」에 모여있는 1백여개의 벤처기업 가운데 하나인 그림전자 金容勳(김용훈)사장은 『올들어선 동업계 모임을 한번도 갖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둘째 가라면 서운해 할 회원들이 사업에 너무 바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림전자는 이동전화의 잡음이나 접속불량의 원인을 잡아내주는 주파수 측정장치를 개발, 오는7월 상품화할 계획이다. 김사장은 이 장치 개발에 성공만 하면 매출이 작년 13억원에서 올해는 40억원 이상으로 늘 것으로 자신한다.
국내 벤처기업은 94년말 1천개에서 작년말 1천5백여개로 늘었다.
그러나 모든 벤처기업이 성공을 보장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전적인 창업도 많지만 남모르게 쓰러져간 기업도 적지않다. 기술은 있지만 그밖엔 아무 것도 없기 때문.
기술이 생명인 벤처기업이지만 지속적인 기술개발이 쉬운 것은 아니다.우수인력 확보가 가장 난제다.
『병역특례 제도가 있으면 뭐합니까. 모두들 조건이 좋은 대기업을 선호해 우리같은 중소기업엔 차례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예 정부가 병역특례자들에 대해 임금 및 근무조건을 일률적으로 정해주었으면 좋겠어요』(金榮大·김영대 다림시스템사장)
멀티미디어카드와 영상소프트웨어 제품을 생산하는 다림시스템의 경우 직원 65명중 14명이 러시아기술자다.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를 확보하려고 각 대학을 돌아다녔지만 지원자가 없어 김사장이 연구소 재직시 사귀었던 러시아 과학자들을 끌어들인 것. 그래도 기술이 좋아 창업 3년만인 작년 35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우리나라는 최고수준의 엔지니어들이 모두 대학에서 강의만 하고 연구개발에는 힘쓰지 않습니다. 이들을 기술개발 현장으로 적극 끌어내야지요. 또 병역특례제 운용도 기술력이 높은 기업에 가산점을 줘서 취업자들을 벤처기업으로 유도할 방침입니다』 (통상산업부 관계자)
지난93년 세계에서 세번째로 티타늄 합금강 소재인 알로이틱을 개발한 명준산업(대표 李明培·이명배)은 마케팅 능력이 부족해 지방사무소의 문을 닫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업사원이 세명밖에 안되다보니 조직적인 마케팅에 한계가 있습니다. 철강관련 대기업에 납품을 추진했지만 중소기업 제품이라며 번번이 거절당해 4년째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남 마산 이흔산업(사장 韓圭龍·한규룡·41)은 2년간 8억원을 들여 작년7월 젖병과 온수를 살균하고 분유를 자동으로 타주는 첨단 유아용품을 개발했지만 선전이 잘안돼 부도 위기를 맞기까지 했다.
「기술밖에 없는」 벤처기업가들의 앞을 가로막는 벽은 그뿐이 아니다.
『기술자가 창업하기에는 행정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창업정보도 부족해요. 경영능력이 없는 경우도 많아 외부의 경영지도가 절실합니다』 (成耆轍·성기철 양재시스템사장)
『벤처기업들은 요즘 벤처빌딩을 만드는 것이 소원입니다. 벤처기업과 창업투자회사, 신기술사업금융회사 그리고 공용연구시설이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벤처의 요람을 만들어 주세요』
(柳龍昊·유용호 벤처기업협회기획실장)
▼ 벤처기업이란…혁신기술 상품화 「모험기업」 ▼
벤처기업이란 고도의 기술력과 지식 및 아이디어를 가진 소수의 모험(벤처)기업가들이 혁신기술을 상품화하기 위해 큰 자본 없이 과감하게 세우는 기업. 유망성이 있으나 자본력이 약해 위험도 따른다.
최근에는 큰 수익을 기대하는 자본가들(벤처캐피털)이 참가, 기술자와 자본가가 결합하는 형태로 벤처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95년 한국벤처기업협회가 생기면서부터. 그 전에는 벤처기업 스스로도 벤처기업임을 인식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