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규제 『말로만 완화』…규제풀면 또하나 생기는 악순환

  • 입력 1997년 4월 3일 20시 05분


《유통업체 S사와 L사는 지난해 10월 녹지대에 할인점 건립을 허용하는 규제완화 발표를 믿고 포항과 청주에 부지를 물색했다. 그러나 거미줄같은 행정규제를 뚫지 못해 결국 두손을 들고 말았다. 「허용」후에도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폐율도 일반상업용지 70%보다 적은 50%로 규정해 도저히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물난리가 난 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지시로 「자연재해 대책법」이 생겼다. 이법에따라공장을 세우려는 기업인들은 재해영향평가를 추가로 받게 됐다. 그러나 새 법은 기존의 환경영향평가와 다른 것이 별로 없다. 결국 기업인들은 비슷한 행정규제를 내무부(재해)와 환경부(환경)로부터 이중으로 받게 됐을 뿐이다. 정부는 지난 93년 국토이용관리법을 개정하면서 공동주택을 지을 수 없었던 준농림지에도 1만평 규모의 부지에 공동주택을 세울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중견건설업체 K사는 이에 따라 수도권 일대에 10만여평의 택지를 매입, 공격적인 주택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듬해 준농림지 운용에 관한 규칙을 정하면서 아파트 공급을 위해서는 △사전결정심의 △국토이용계획변경 △환경심의 △토지거래허가 △소유권 이전 △분양승인 등의 절차를 밟도록 했다. K사가 이같은 과정을 거쳐 분양을 끝내기까지는 당초예상보다 2년이상 더 걸렸다. 금융비용까지 급증, 사업수익은 형편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일 발표된 규제개혁 10대과제중 영세사업자의 영업활동 규제정비안은 소방위생, 건축물의 공장용도 전용 등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세사업자의 대부분이 서비스나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뭘 하자는 규제개혁인지 알기 어렵다. 이처럼 「빛좋은 개살구」같은 규제완화는 외형상으로는 이미 이루어진 규제완화 2천4백67건에 버젓이 포함돼 있다. 금융규제의 주체인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에 금융규제완화를 맡기는 식으로 실무작업을 추진하다보니 완화가 속빈 강정이 되고 말았다. 규제가 사라지면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규제가 그 공백을 채워왔다. 재경원 규제완화기획단 관계자는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정부규제 1만2천여건은 지난 93년이래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일부 규제를 없애도 경제환경이 바뀜에 따라 새로운 규제의 필요성이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업계에서 요구한 사항을 중심으로 단편적인 규제완화조치가 이뤄져 왔다. 이러다보니 전체적인 규제현황 분석도 제대로 되지않아 효율적인 작업이 될 수 없었다』(재경원 관계자) 『그간 완화건수에 매달리는 실적위주가 되다보니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완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공정거래위원회 李康雨·이강우부위원장) 규제대상인 기업과 국민은 물론 정부 스스로도 그간의 규제완화 정책이 별다른 소득이 없었음을 시인하는 대목이다. 2일 정부가 민관합동간담회를 통해 발표한 규제혁파 선언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그래서 여전히 회의적이다. 『민관합동 규제개혁위원회가 내놓은 방안들은 관청에서 나온 얘기들을 취합한 것에 불과합니다. 위원회는 빠른 시일내에 특별법을 입안한 뒤 해산하고 청와대직속으로 규제철폐기구를 상설화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민간경제계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전국경제인연합회 규제연구센터 李承哲·이승철박사) 〈임규진·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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