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횡포 아래서 견뎌낼 중소기업이 몇이나 될지를 새삼스레 깨닫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제 본보사회면에실린유망 중소기업 교하산업의 부도는 금융권과 대기업들의 합작품이다. 전세계 방수포시장점유율이 35%인 이 회사는 한보철강 부도직후 거래 금융기관들이 일시에 1백억원 이상의 자금을 회수한데다 원료를 공급하는 대기업의 현금결제 요구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런 식이라면 5대 재벌그룹 계열사라도 살아남을 장사가 없다는 게 업계 평이다. 한보 부도로 금융시장이 경색되자 일시에 자금을 거둬들인 금융기관들이 뒤늦게 지원에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던 것 같다. 물품대금 현금결제나 금융시장에서의 신용 하락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거래 중소기업의 성장을 통해 자신도 함께 사는 공생(共生)의 윤리는 없고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한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무책임만 보인다.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던 중소기업의 싹이 이처럼 잘린대서야 기업 의욕이 살아날 길이 없다. 그것도 한보 부도 후유증을 줄인다며 중앙은행은 통화공급을 늘리고 정부와 은행들은 걱정 말라고 큰소리 치는 중에 이런 일이 빚어졌으니 금융당국은 도대체 뭘 했는지 알 수 없다. 일선 금융창구에선 대출시 담보요구가 더 심해지는데도 정부는 「금융대란(大亂)」을 막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채권금융기관측은 자금을 지원했음에도 교하산업 경영자가 자금관리를 소홀히 하고 멋대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로의 잘잘못은 법원에서 가려질 일이다. 그러나 이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차제에 무슨 사건이 터지거나 악성 루머가 번질 때 무조건 대출금부터 회수하고 보는 금융풍토도 개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