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자금난에 시달려온 진로그룹이 21일 끝내 부도를 냈음에도 금융권이 18일 체결한 부실징후기업 정상화협약에 따라 금융거래를 계속할 수 있도록 「비상 특혜조치」를 취한 것은 사실상 정부의 결정이라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말한다. 부실기업정상화협약 자체가 진로그룹의 도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선택으로 재정경제원이 은행연합회 등을 움직여 이 협약을 탄생시켰다는 것.
정부측도 이를 정면 부인하지는 않는다. 『기업이 살고 죽는 것은 기업 자신의 문제』라고 누누이 강조해온 姜慶植(강경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최근 『진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소주회사인데 쓰러져서야 되겠느냐』고 말할 때 벌써 정부의 입장은 정리돼있었다. 스스로 시장주의 신봉자임을 자처해온 강부총리가 진로살리기에 발벗고 나선 배경에는 경제적 측면과 함께 정치적 고려가 혼재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순위 19위의 진로그룹이 한보그룹과 삼미그룹에 이어 무너질 경우 그 파급이 엄청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정부와 금융권이 「인공호흡기」를 떼면 부도위기에 몰릴 대기업이 적지않다는 것도 공공연한 이야기다. 자칫하면 금융부문과 기업부문의 부실이 한꺼번에 터져 걷잡을 수 없는 경제위기를 낳을 우려가 있다는 것.
한편 진로그룹이 무너질 경우 현정권이 입을 정치적 타격에 대한 우려도 진로살리기의 한 배경으로 거론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진로가 한보와 같은 운명이 되면 金泳三(김영삼)대통령 정권이 한보 부도이후 겪고 있는 것과 유사한 부담을 지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張震浩(장진호)진로그룹회장측이 경영권 포기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과 관련, 다른 관계자는 『장회장의 대응여하에 따라서는 「제2의 한보청문회」와 같은 상황이 벌어져 현정권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지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진로살리기가 재경원 차원을 넘어선 판단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임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