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방지협약」금융권 강타…부도난 기업도 수표-어음발행

  • 입력 1997년 4월 23일 07시 57분


금융당국이 흑자도산 위기의 대기업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은행 종금 등 금융권을 강제로 꿰맞춰 출범한 부도방지협약이 금융권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8일 공식 발효된 부도방지협약의 골자는 정상화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은 갱생여부가 판가름날 때까지 모든 채권의 회수를 전면 중지한다는 것. 은행연합회는 이를 위해 서울어음교환소 규약을 개정, 정상화대상 기업의 경우 부도가 나더라도 당좌거래(수표 및 어음의 발행)를 유지시키는 기발한 부실기업 회생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제2금융권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자칫하다간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해 자신들이 경영위기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 종금사 및 파이낸스 할부금융 등은 진로그룹에 대한 채권회수가 전면중지되자 신규대출은 아예 중단하고 기존대출 회수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D파이낸스 관계자는 『영업규모가 영세한 일부 제2금융기관들은 협약발효 직전부터 부채가 많거나 자금악화설이 나도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부실징후기업 리스트를 작성, 담보로 잡은 어음을 만기도 되기 전에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문턱을 넘지 못해 제2금융권에서 급전을 조달했던 중소기업들이 갑작스런 자금경색으로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 부실징후가 보이는 기업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부도방지협약이 자칫 부도기업을 양산하는 꼴이다. 어음 수표 등 신용질서의 근간이 무너진 것도 이번 협약이 야기한 부작용. D종금 관계자는 『채권금융기관이 만기가 된 어음을 돌리는 행위나 결제자금이 부족해 부도가 난 기업의 당좌거래가 취소되는 것은 정상적인 상거래 질서』라면서 『부실기업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금융기관이 앞장서서 상거래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진로는 지난 18일 교환에 돌아온 당좌수표(30억원가량)를 결제할 자금이 없자 서울은행에 사고어음신고서를 제출, 진짜수표를 가짜로 만드는 편법까지 동원해 부도를 가까스로 막아 비난을 사고있다. 또 지난 21일에는 은행신탁계정에 있는 진로 기업어음(CP)을 제일은행이 교환에 회부, 은행 스스로가 진로어음을 부도시키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부도방지협약이 은행 중심으로 급조되면서 종금 증권 생보 등 다른 금융기관들이 협약 가입을 보류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협의회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특히 종금협회는 추가지원자금 여신기관에서 종금협회가 제외되지 않을 경우 오는 28일 열리는 대표자회의에 불참할 방침이며 증권 보험 등도 아직까지 참여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강운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