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영업팀원 대부분이 한달째 해외에서 뛰고 있습니다. 휴렛패커드 컴팩 등 외국바이어들을 붙잡고 「우리가 만든 64메가D램을 써달라」고 끈질기게 설득하고 있어요』(삼성전자 반도체담당 鄭義容·정의용이사)
『그동안 해외딜러나 대리점에 판매를 맡겼는데 요즘은 본사 직원이 해외 현지에 상주하면서 판매를 독려하고 있습니다』(기아자동차 姜文錫·강문석상무)
해외시장에서 고투를 거듭해 온 수출기업들의 발걸음이 경기의 희미한 회복조짐 속에서 더욱 바빠지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해외딜러들에게 고객관리용 소프트웨어를 직접 나눠주며 판매목표 달성을 독려하고 있다. 또 정비기술자까지 본사 파견요원으로 대체하고 있다. 애프터서비스가 판매촉진의 열쇠라는 판단에서다.
현대자동차도 매출액 대비 해외광고비 비중을 최근 3%에서 5%로 늘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미국 등지에서 대대적인 광고공세에 나섰다. 대만 알바니아 태평양섬나라 등 틈새시장도 빼놓지 않는다.
올1.4분기(1∼3월) 해외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만도 못했던 종합상사들은 그야말로 총력전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매우 이례적으로 각 영업부문 책임자들을 전원 참석시킨 수출확대회의를 최근 본사에서 가졌다.
대우도 지난달 18∼19일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지사장 법인대표 등을 본사에 불러 수출확대 및 신사업추진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또 당초 올해 수출목표로 잡았던 1백50억달러에 10억달러를 더 얹어 부서별로 할당하는 등 비상을 걸었다. 경공업제품의 수출업무를 담당하는 한 직원은 『납품업체를 매일 방문해 「수출단가를 낮추지 못하면 다같이 망한다」고 설득하고 있다』며 『실적을 올리려고 타업체 수출대행 업무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고 말했다.
무역회사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수출물량이 차츰 늘어나자 컨테이너를 실어나르는 해운업체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올들어 3월까지 미주지역으로 실어나른 컨테이너는 모두 6만7천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하나).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8% 늘어났다. 2월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천TEU가 줄어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으나 3월엔 4천TEU가 늘어 업계관계자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金鍾顯(김종현)한진해운 수출판매1팀장은 『3월말부터 화물을 실을 빈공간이 없느냐는 문의전화가 부쩍 늘었고 빈 공간이 없어 컨테이너 선적을 다음 배로 미루는 경우도 있다』며 수출경기 회복을 실감하는 눈치.
그러나 수출현장을 뛰는 기업들엔 턱없이 늘어나는 물류비용과 구석구석에 밴 정부규제 등 넘어야할 장벽은 여전히 많다. 지난달 14일 무역협회가 마련한 무역진흥협의회에 참석했던 한 중소기업 사장은 『화물전용도로 하나 안만들어주면서 어떻게 수출을 늘리라는 거냐』며 『높은 금리에 대출기간도 다른 나라보다 형편없이 짧아 돈빌리기가 겁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남 천안공장에서 부산항을 통해 물량을 선적하는 다른 중소기업인도 『95년건당2만원 하던 통관수수료가지금 3만원까지 올랐는데도 바이어가 떨어질까봐수출가에 반영하지 못한다. 사실상 출혈수출을한다』고 털어놓았다.
吳泰賢(오태현)현대자동차 수출기획팀장은 『한국 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고전하는 데에는 일본엔화의 약세가 한몫하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환율관리를 주문했다.
수출증가는 단비처럼 반갑지만 기업들이 외형적인 수출목표에만 매달려 구조조정을 등한시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鄭鎭夏(정진하)LG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아직도 우리기업들이 단가를 낮춰서라도 수출물량만 늘리려는 「가격장사」에 치중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면서 『엔화강세와 반도체호황 등이 만든 거품이 사라진 지금이야말로 구조조정의 호기』라고 지적했다.
李漢久(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장도 최근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통화공급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에 대해 『이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며 『내성(耐性)을 지닌 고질병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鄭文建(정문건)삼성경제연구소 상무도 『정보통신 부문의 고속성장 등 우리경제의 구조개선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업들이 수시로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새 사업을 펼치기엔 인수합병(M&A)시장이 미약하고 기업설립 규제가 여전히 심하다』며 「제도적 장벽」을 빨리 헐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내정·박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