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는 대농그룹의 부도는 지난 3월 미도파 인수합병(M&A)공방에 휘말리면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지난 9일부터는 대농그룹이 1차 부도를 냈다는 악성루머가 금융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부도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였다는 것.
금융계는 대농그룹이 미도파에 대한 M&A공세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출혈을 한 것이 부도위기에 몰리게 된 직접적인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3월초 신동방그룹이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M&A를 공식 선언하자 대농그룹은 이를 막기 위해 1천2백88억5천만원의 거액을 쏟아부었다. 대농중공업과 메트로프로덕트가 주식시장에서 미도파주식 5백3억3천만원어치를 사들였으며 ㈜대농이 성원건설과 대한종금에서 7백85억2천만원어치를 매입했다. 대농그룹의 출혈자금규모는 지난해 매출액 1조7천8백53억원의 7.2%에 달하는 거액. 대농은 계열사의 지분 등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자금확보에 나섰지만 필요자금의 상당부분을 금융기관에서 끌어다 쓸 수밖에 없었고 금융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농그룹은 LG 삼성 현대 등 재벌기업 관계사들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 5백억원어치를 사준데 힙입어 미도파 경영권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자금사정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더구나 지난 3월말에는 「㈜대농이 지난해 장기보유물량 등을 처분하면서 2천9백32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회계감사 내용이 공표되면서 대농그룹은 또 한차례 치명타를 맞았다. 이를 계기로 금융기관들이 무더기로 대출금을 회수하고 상환기간연장을 기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대농그룹은 매일 돌아오는 어음을 막기도 힘겹게 되자 마침내 지난 17일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에 부실징후기업 정상화를 위한 금융기관협약 대상기업체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한편 금융계 일각에서는 M&A방어과정에서의 자금출혈은 대농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리게 된 직접원인일 뿐 본질적인 원인은 섬유산업이 장기불황에 빠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한보와 삼미 진로사태도 대농의 자금사정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 朴龍學(박용학)명예회장 등이 지난해말과 올해초 정부고위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한보파문에 휩쓸려 「내 코가 석자」인 정부의 어느 누구도 대농살리기에 힘을 보태주지 못했다는 것.
〈천광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