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4위인 대농그룹은 그동안 무리한 사업 다각화로 재계순위에 걸맞지 않게 많은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또 창업주인 朴龍學(박용학·79)명예회장의 「마당발 사교」덕분에 일반인들에게 대농이 실력 이상의 상위랭킹으로 인식돼 있기도 하다. 박명예회장은 「재계의 마당발」 「사교의 귀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바깥 활동이 왕성해 섬유산업연합회회장 한일경제협회장 무역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강원 통천에서 부농의 차남으로 태어나 고향에서 사설우체국을 설립, 운영하기도 했던 박명예회장이 55년 서울에서 대한농산이란 무역회사를 차린 것이 대농그룹의 모태가 됐다.
박명예회장은 대한농산으로 큰 돈을 벌어 60년대 서울 부산 대구 등의 5개의 제분공장을 인수하고 68년 금성방직 태광방직을 인수한데 이어 71년 미도파백화점을 설립하는 등 사업이 날로 확장됐다. 그러나 70년대 초반 국내 최초로 원면 선물거래를 시도했던 ㈜대농이 72, 73년 오일쇼크 때 원면가격의 폭락으로 막대한 환차손을 입게 되면서 경영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받게됨으로써 사업확장은 일단 멈춤상태로 접어들었다. 당시 박명예회장은 재무부로부터 미도파와 관악컨트리클럽을 매각하도록 종용받고도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박명예회장은 아직도 이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10년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대농은 과거 원면파동을 교훈삼아 그동안 면방산업 의존적 사업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사업을 다각화하기 시작, 계열사를 10여년만에 5개에서 21개로 불렸다.
특히 朴泳逸(박영일)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직후인 지난 89년 대농창업투자회사 설립에 이어 △92년 미도파건설의 전신인 서복건설 △94년 대농중공업 △96년 컴퓨터소프트웨어 전문회사인 한메소프트를 인수하는 등 섬유에서 유통 건설 유선방송 정보산업 등에까지 사업다각화를 꾀해왔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대농은 전문화 경영을 소홀히 하고 재벌그룹의 모양갖추기식 영역확대에만 열을 올렸다는 지적이 많다. 박회장은 작년말부터 부동산매각 등 뒤늦게 사업구조조정에 나섰으나 미도파가 기업인수합병(M&A)에 휘말리면서 기업경영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영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