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자본」서 「지식」으로

  • 입력 1997년 7월 11일 19시 59분


과거 농경사회는 생산의 기본적인 요소가 땅이었기 때문에 지본(地本)사회라 부른다. 그런데 산업사회에 들어와 생산의 기본단위가 공장으로 바뀌면서 공장과 설비를 운영하는 자본이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하는 자본(資本)주의 사회가 됐다. 하지만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생산효율의 향상도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미래에는 지식과 정보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지식사회가 될 것이다. 오늘날 국제무역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이 지적재산권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 미국 경쟁력의 핵심 ▼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던 미국이 1980년대 들어 일본에 역전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9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 경제 전면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제조업의 경쟁력은 잃었어도 미국에는 지식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반도체 생산은 일본과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지만 그 반도체를 이용해서 부가가치가 높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미국 기업이다. 수십년간 제조업에서 위상을 떨치던 회사들의 매출이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뒤진다. 좀 분야가 다른 얘기지만 금융산업에서 고수익을 거두는 것도 역시 미국은행들이다. 자산규모는 일본은행이 1등부터 20등까지를 거의 독차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익을 내는 것은 미국의 투자은행이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제 지식은 고매한 학자들만의 사치품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지식에도 값이 매겨지는 지가(知價)사회에 살고 있다. 미국이 거액을 투자해서 정보 슈퍼하이웨이를 건설하는 것도 지식의 원활한 교류를 위한 것이다. 지식이 경쟁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본(知本)사회가 된 것이다. 지식과 정보경쟁에서 미국이 앞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93년에 일본을 찾은 피터 드러커 교수는 그때 벌써 일본이 겪는 불황이 경기침체가아니라 「이행(移行·Transition)의 진통」이라고 지적했다. 드러커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가 지식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군대식 대규모 조직이 정보형 소규모 조직으로 분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일본 국내에서는 이런 현상을 거품을 제거하는 노력의 한가지로만 봤으나 드러커 교수의 의미 부여는 이처럼 좀 다르다. ▼ 「조직의 소형화」 특징 ▼ 그렇다면 지식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기업이나 사회 전반에 어떤 특징적 현상이 나타나는가. 드러커 교수는 미국과 일본을 비교해 가면서 이를 설명하고 있는데 몇가지 기억나는 지적을 소개해 본다. 우선 대기업 노동자가 줄어드는 대신 중견기업이나 지식을 자본으로 삼는 업종의 고용이 늘어난다. 중간조직이 줄고 제너럴리스트보다는 스페셜리스트가 늘어난다. 지적 생산성은 성과주의로 판단되는데 미국은 이 제도가 낯설지 않지만 일본은 고민에 빠진다. 이런 현상이 부분적으로 우리에게도 나타난다면 우리도 이미 지본사회에 접어든 것이다. 이건희(삼성그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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