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채권단회의 결렬]『자구계획 구체화하라』 강공

  • 입력 1997년 7월 30일 20시 56분


기아호(號)는 과연 폭풍우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기아는 30일 계열사수를 5분의 1수준으로 줄이는 등 자구계획안을 채권금융기관에 제시하고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기각당했다. 金善弘(김선홍)기아그룹 회장은 이날 채권금융기관 대표자회의에 참석해 기아측 자구계획을 설명했으나 금융기관측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추가보완을 요구하고 회의를 8월1일로 연기했다. 물론 자금지원도 연기됐다. 금융기관측이 문제삼은 것은 자구계획과 경영진 퇴진각서. 즉 김회장이 『아시아자동차의 분리매각 방안에 반대한다. 아시아자동차는 잘 될 것이다』는 등으로 자구계획을 설명한데 대해 금융기관들이 구체적인 자구계획 실천일정 등을 요구하고 나선 것. 또 금융기관의 경영권포기각서 요구에 대해 김회장이 『채권단이 요구한다면 자구계획을 통해 기아가 경영정상화가 안된다면 언제든지 물러나겠다』는 정도로 비껴가려 하자 채권금융기관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어쨌든 채권단이 기아측 자구계획을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이날 지원될 예정이던 1천8백85억원도 기아측에 건네지지 않았다. 기아가 돈을 이날 받지 못했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연기된 회의가 이틀 뒤에 속개되며 이때 자금지원을 받기로 한다면 그리 큰 충격은 아니다. 기아측은 더 강도높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기아측은 그동안 28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13개로 대폭 줄이겠다는 자구계획안을 발표했다가 채권단의 요구에 밀려 이를 다시 5개로 줄이겠다는 추가 자구계획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채권단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으니 더 강도높은 자구계획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채권단의 요구는 기아측의 자구의지를 확인하자는 것이며 자구계획도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 한 채권은행장은 『기아가 왜 「국민기업」이냐』며 『엉망으로 경영하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아서 좌초위기에 왔는데 왜 금융기관들이 다 알아서 살려야 하는가』고 말하고 있다. 채권금융기관들의 관심은 기아그룹의 정상화보다는 어떻게 빌려준 돈을 덜 떼이고 이 사태를 헤쳐 나가는가에 더 쏠려 있다. 한보 삼미에 이어 진로 대농 등에 거액이 물려 있는 판에 재계 8위인 기아에 돈이 장기간 묶이면 금융기관조차 위태롭기 때문이다. 기아의 자구계획안이 받아들여졌다 해도 부동산 경기 불황 등 여건을 감안하면 기아 회생의 길에는 장애가 적지않다. 기아는 서울 여의도사옥 등 모두 70건, 3조1천억원어치의 부동산을 매각할 방침이다. 이중 1조원어치를 올연말까지 매각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부동산전문가들은 기아가 올연말까지 기껏해야 1천억원 가량을 처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기아 진로 대농 한보 삼미 등 부실기업들이 급매물로 내놓은 부동산은 모두 15조∼20조원이 넘지만 부동산경기 불황으로 매물을 거의 처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또 채권은행단은 기아그룹에 지원할 계획인 1천8백85억원도 기아가 당초 요청한 3천3백억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규모. 기아는 부도유예기간 최소한 3천억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부족액을 메우기 위해서는 부동산을 급히 매각해야 하지만 쉽지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기아의 삼자인수를 바라지 않는 현대와 대우가 기아가 내놓은 부동산을 매입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기아는 10월 회심작인 미니밴 KVⅡ를 출시하는 등 하반기 동안 모두 10여종의 신차를 잇따라 내놓을 계획이다. 기아는 특히 KVⅡ가 지난 82년 기아를 회생시킨 봉고신화를 재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자동차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윤희상·이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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