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맥주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물탄 것처럼 밍밍하다」 「뒷맛이 쓰다」 「톡쏘는 맛이 일품」. 제각기 미감(美感)이 제법 소믈리에(포도주 감정사) 수준이다. 과연 그럴까. 얼마전 사원들과 함께 「맥주맛 알아맞히기」를 해보았다. 맥주 3사의 대표적인 맥주를 한잔씩 놓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맛을 보고 브랜드를 알아맞히는 이른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본 것이다. 20여명이 함께 한 이 자리에서 3개 브랜드를 정확하게 구별해낸 사원은 4, 5명에 불과했다.
중국에서 한국산과 일본의 소니 워크맨을 가지고 비슷한 실험을 해보았다. 성능과 모양이 비슷한 제품을 골라 상표를 뗀 후 모양과 음질만을 확인하고 제품을 고르게 했더니 선택률은 5대5 정도였다. 다음에는 한국브랜드와 소니 브랜드를 붙이고 고르게 했더니 상황은 돌변, 2대8 정도로 소니 선호도가 높았다.
다소 비싸더라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좋은 이미지」가 가져다 주는 경쟁효과다. 「좋은 이미지」에는 이밖에도 처음부터 「과연」이란 말을 듣는 승인효과, 실패나 잘못도 관대하게 보아주는 쿠션효과가 있다.
제품(Product) 가격(Price) 프로모션(Promotion) 유통(Place) 등 기업의 마케팅전략을 구성하는 「4P」에 이어 소비자를 움직이는 제5의 강력한 힘이 바로 「이미지 파워」다.
최근 무형의 재산인 「이미지」라는 노다지를 찾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생산자 중심」의 마케팅활동이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는 경영환경의 변화에 우리 기업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미지 형성이론에는 「있는 그대로」의 실체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대상결정이론」과 실체와 고객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는 「인정결정이론」 등 두가지가 있다.
기업들이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것은 바로 후자의 이론에서 비롯된다. 「일류」를 이야기하고, 고객 만족을 내세우고, 「환경」과 「믿음」을 끌어들인다. 방법과 메시지는 다르지만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좋은 이미지」라는 고지다.
그러나 「환경친화」를 내세운 기업이 공장폐수를 방류하거나 일류품질을 이야기하는 기업의 제품이 잦은 고장을 일으킨다면 그 기업에 대해 어떤 이미지가 형성될 것인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더욱 강화되어야 하지만 기업의 메시지와 행동이 불일치하고 실체는 변하지 않으면서 그럴 듯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의해서만 「좋은 이미지」를 얻으려는 「커뮤니케이션 만능현상」은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있어 경계해야 할 것은 조급성이다. 이미지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 효과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무형의 재산이다. 때문에 인내심과 신념이 필요하다.
말보로는 1954년 발견한 「카우보이」라는 광고 컨셉트를 43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사용, 세계 넘버원 브랜드로 군림해오고 있다. 「Ivory」라는 브랜드 신화로 유명한 P&G에는 「3C」로 불리는 브랜딩정책이 있다. 「첫째 일관성(Consistency), 둘째 일관성, 셋째 일관성」.
보이지도 않는 「이미지 재산」을 쌓겠다고 투자를 하는 것처럼 허망하게 보이는 일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해면에 나와 있는 빙산의 일각에서 바다의 심연으로 이어지는 빙산의 본체를 볼 줄 아는 선장만이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스피노자 같은 기업마케팅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이인호(LG애드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