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취임한 강경식(姜慶植)부총리는 「시장경제의 정착」을 내세웠다. 이후 기업 금융위기를 겪으며 받은 따가운 질책에도 아랑곳 없이 고집스럽게 시장경제론을 펴왔다.
강부총리는 취임과 함께 금융빅뱅에 착수했다. 중앙은행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치고 금융감독원을 설립하는 내용의 「금융개혁안」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시장원리가 실종된 금융시장을 되살리기 위해선 금융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강부총리의 주장은 힘을 얻었다. 재정경제원 금융실과 한국은행,금융기관은 온통 「새틀」만들기 작업에 매달렸다.
이런 가운데 진로 대농 기아 등 굵직한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자 「부도유예협약」이란 카드가 나왔다. 시장주의와 정부개입을 적당히 섞은 시책.
기아사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었다. 당연히 물러나야 했던 김선홍(金善弘)회장이 버티기에 들어가자 강부총리의 시장주의는 꼬였다.
강부총리는 다시 기아문제는 해당기업과 채권단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시장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일파만파로 퍼진 기아사태는 시장전체를 위기로 몰았다. 연쇄부도사태가 계속되고 금리 환율 주가가 외줄타기를 지속했다.
강부총리의 시장주의는 「8.25 금융안정대책」으로 일단 후퇴한다. 하지만 기아문제에 한해 시장주의는 완강했다.
해태 쌍방울 뉴코아가 부도위기에 몰리자 기아와는 전혀 다른 해법이 적용되면서 시장주의에 대한 혼란만 가중됐다.
결국 정부는 21일 협조융자협약과 기아사태 조기해결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강부총리의 시장주의가 백기(白旗) 항복을 한 셈이다.
시장주의 실패는 양적으로 주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한 한국경제가 질에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임규진기자〉